10월 3일은 단기 4351년에 맞이하는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하나인 개천절(開天節)이다.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을 가진 개천절은 민족항일기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고,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였던 ‘나철’이라는 분이 ‘단군왕검’이 우리 민족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1909년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그 후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정하고, 대한민국의 뿌리를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에 두기로 결정함으로써 건국절을 서기 전 2333년 음력 10월 3일로 선포했다고 한다.

임시정부에서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내외 곳곳에서 개천절 기념행사를 열었는데, 그 때 독립운동가들에게는 개천절이 되면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더욱 강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하였던 개천절이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고 정부가 수립된 이후 1949년부터는 양력으로 10월 3일을 개천절로 지정하여 국민들이 더 쉽게 기억하고, 숭고한 의미를 기리게 하였다.

우리나라를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위대한 나라’라고 하는 연유는 바로 서기 전 2333년 전에 단군왕검이 세우신 ‘고조선’의 역사를 바탕으로 서기 후 2018년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약 5천년 역사동안 이 땅에 수없이 많은 부침(浮沈)과 흥망을 거듭해 오면서도 민족정체성을 잃지 않고 국가 번영의 대장정을 열어 발전시켜 온 자긍심의 표현이라고 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조선은 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이 환생한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고,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고조선을 세웠다는 ‘단군신화’에서 시작된다. 즉 고조선은 우리 민족의 첫 나라이고, ‘단군’은 우리 겨레의 시조(始祖)인 것이다.

우리 지역 공주에서도 단군의 신단을 모시고 매년 10월 3일 개천절마다 ‘개천제’를 지낸다. 내일도 10시 30분에 봉황산 기슭인 무령로 154에 있는 단군성전(檀君聖殿)에서 공주의 단군성조봉향회가 주관하여 개천제를 봉행할 예정이다.

필자의 선친께서도 단군성조봉향회 회장을 역임하셨기 때문에 필자도 몇 차례 개천제에 참반(參班)해 본 경험이 있다. 개천제가 다가오면 여러 날 전부터 연로(年老)하신 봉향회 임원들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 단군성전에 임하여 조심스레 단군성조(檀君聖祖)의 영정과 신위를 모시고, 주위를 깨끗하게 정화하며, 신중하게 제관들을 정하고, 성심의 예로써 제물을 마련한다.

개천제를 모시는 당일에는 참반한 모든 이들이 언행을 삼가고, 주관하는 봉향회장의 지시에 따라 엄숙한 가운데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단군성조(檀君聖祖)님께 지극한 예를 갖춰 제를 올린다.

솔직하게 회고하건대, 공주의 개천제를 몇 차례 참반하여 보면서 필자도 처음에는 단순하게 우리나라를 건국하신 단군성조님께 올리는 제례로만 잘 못 인식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개천절의 유래를 제대로 알고 나서 보는 개천제는 나라를 처음 세운 고조선 역사에서부터,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임시정부에서 우리나라의 건국절에 민족정기를 회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다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 민족과 나라를 지켜 오신 선조들께 스스로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웅진(熊津)’이라고 하는 우리 공주의 지역정체성을 가지게 한 태실(胎室)이 곰나루의 곰굴에서 연유하였다는 설화를 통해 볼 때, 매년 개천절이 되면 우리나라의 건국과 공주의 태생이 깊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군조(檀君祖)에 우리 민족을 잉태하여 고조선의 역사를 형성하신 분이 ‘웅녀(熊女)’이신데 우리 공주 지역명을 잉태한 설화 속의 주인공도 ‘웅녀’이니, 이 두 신화 속에 무언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것이 어찌 추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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