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웅진백제 문화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남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주사람들이 훌륭한 백제문화를 더욱 잘 알려면 남경을 다녀와야 한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공주에 있는 역사, 문화 관련 기관?단체에서는 남경을 많이 찾아간다.

지난 8월 29일부터 5일간 공주문화원에서 중국 속의 웅진백제 문화를 찾아보기 위해 남경 육조박물관을 중심으로 문화 답사 여행을 다녀왔다.

필자도 동행했었는데, 공주에서 보던 백제 문화유산보다도 오히려 남경에 가서 중국의 유적과 유물을 보면서 우리 웅진시대 백제 문화가 정말로 훌륭하면서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남경은 오(吳), 동진,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6왕조의 수도였기 때문에 육조고도(六朝古都)라고 하며, 장안(長安), 낙양(落陽), 연경(燕京)과 함께 ‘4대고도’라고도 부른다. 고대 중국 여러 나라의 도읍지요, 명나라 초기 도읍지였기 때문이다.

남경에 가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공주와 유사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우선 지형적으로 볼 때 남경은 삼면이 구릉지로 이루어져서 천연 요새라고 하는데, 공주의 지형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특히 남경은 남조시대 양나라(502?557) 때 웅진백제(475?538)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남경에는 백제와 교류하던 유적과 유물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백제 왕궁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방형 구조였다고 하는데, 전문가에 의하면 그것은 백제가 남조와 북조로부터 받아들인 것으로, 이는 일본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남조의 진묘수(鎭墓獸)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진묘수와 매우 비슷하게 닮았는데, 무령왕 진묘수가 훨씬 더 정교하고 섬세하며 품격이 있다.

또 우리나라 왕릉 유적 중 유일하게 발굴된 무령왕과 왕비 묘지석도 중국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중국의 묘지석에서 볼 수 없는 구멍이 무령왕과 왕비 묘지석에는 있다는 점에서 무언가 심오한 역사철학이 웅진백제시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향로의 생김새도 유사하지만 백제의 금동대향로는 크고 정교하며 미려하고 섬세한데 비하여 양나라의 향로는 모양만 갖추고 있고 크기는 백제의 향로에 비하여 매우 작다.

남경에 가보면 무령왕릉 등에서 발굴된 전축분 무덤이 양나라의 전축분에서 벤치마킹한 것이 틀림없고, 백제 때 공산성을 축조하던 방식은 양나라의 성벽 축조방식과 똑 같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령왕릉과 교동 향교 뒷산에서 최근에 발굴한 교촌리 고분에서 발견된 배수로는 남경 육조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배수로와 매우 유사하지만, 웅진백제 때의 배수로가 형태와 기능면에서 훨씬 더 우수하다.

한편 무령왕릉에서 볼 수 있는 등감(燈龕; 왕릉을 축조하기 위해 벽돌을 쌓을 때 등잔을 놓을 수 있도록 비워 놓는 공간)의 모양도 남조의 것과 매우 유사한데, 백제 때의 하트(복숭아) 모양 등감이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답다. 또한 연화문은 양나라와 백제가 섬세한 점까지도 매우 유사하고, 기와 막새 문양 또한 비슷하게 보인다.

또 한편으로 공주에는 공산성이 있는데 남경에는 명대성벽(明代城壁)이 있다. 공주에는 무령왕릉이 있는데 남경에는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의 명효릉(明孝陵)이 있다.

공주에 공자(孔子)를 제사지내고 유학을 가르치기 위한 향교가 있는데 남경에는 ‘부자묘(夫子廟)’가 있다. 공산성에 ‘영은사’라는 절이 있는데, 남경에도 똑같은 이름의 절이 있다. 이런 점에서 공주와 남경은 매우 공통점이 많은 역사고도인 것이다.

이 밖에도 청동거울 등등 남경과 공주에서 함께 찾아볼 수 있는 유물과 유적은 매우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웅진백제가 남경에 수도를 정했던 과거 양나라로부터 많은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모방했던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문화로 창조, 승화,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게 전승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백제 후예들이 자긍심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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