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돈황, 막고굴

 

여행 여섯째 날 우리는 세계 최대의 석굴사원의 “막고굴”이 있는 돈황에 도착했다. 막고굴(莫高窟)의 비문에 따르면 서기 366년 ‘낙준(樂?)’이라는 승려가 수행 길에 올라 해질 무렵 밍사산(?沙山, 명사산) 동쪽 기슭에 이르렀단다. 석양이 미침 맞은편의 싼웨이산(三危山, 삼위산)을 비추자 산봉우리가 온통 금빛으로 빛났다. 그 속에 마치 천만 존의 부처님이 그 금빛 속에서 광명을 나는 것 같고, 천상(天上)의 향음신(香音神)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정성으로 도를 닦아오던 낙준(樂?)은 이 장엄한 불국(佛國)의 현상에서 부처님의 계시를 보고 이곳을 도량(道場)으로 싼야 불도를 닦고자 결심, 불교의 예법에 따라 장인을 불러 절벽에 첫 번째 석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석굴은 16국 시대 전진(前秦) 건원(建元) 2년(366) 건립되기 시작하여 16국(十六?),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수(隋), 당(唐), 오대(五代), 서하(西夏), 원(元)에 이르기까지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당의 무측천(武?天) 시기에 건립된 석굴이 이미 천개를 넘어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불렸다.

카라반들이 타클라마칸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이곳은 2천 년 전부터 실크로드의 중요한 정거장으로 “돌아 올 수 없는 사막” 이라고 불린다. 상인들과 순례자들은 가파른 벼랑 위에 있는 수백 개의 석굴사원에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두 손 모아 무사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막고굴은 후에 도굴과 약탈에 시달려야 했다. 스타인은 고서적 7천여 권을 약탈해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도굴된 흔적들이 우리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도 막고굴 17번 장경동에 있다가 프랑스 소유가 됐다. 백제의 유물들도 도굴을 당했는데….

천여 개의 석굴 중 남아있는 492개의 석굴에 2,000점이 넘는 벽화들은 아직도 건재했다. 비단길의 문화사와 미술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진귀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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