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계단/ 나태주

네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지.

돌계단 하나에 석등이 보이고
돌계단 둘에 석탑이 보이고
돌계단 셋에 극락전이 보이고
극락전 뒤에 푸른 산이 다가서고
하늘에는 흰구름이 돛을 달고 마악
떠나가려 하고 있었지.

하늘이 보일 때 이미
돌계단은 끝이 나 있었고
내 손에 이끌려 돌계단을 오르던 너는
이미 내 옆에 없었지.

훌쩍 하늘로 날아가 흰 구름이 되어버린 너!

우리는 모두 흰 구름이에요, 흰 구름.
육신을 벗고 나면 이렇게 가볍게 빛나는
당신이나 저나 흰 구름일 뿐이에요.
너는 하늘 속에서 나를 보며 어서 오라 손짓하며 웃고
나는 너를 따라갈 수 없어 땅에서 울고 있었지.
발을 구르며 땅에 서서 울고만 있었지. (1976)

제작연도를 보니 1976년도. 그때는 아직 우리 내외에게 애기가 생기지 않았을 때입니다. 내외는 많이 쓸쓸했고, 늘 등허리와 옆구리가 허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은 여행이란 것을 다니기도 하는데 수중에 돈이 없으니 만만하게 떠나 볼 여행지도 없었습니다.

마침 어린이날을 맞아 쉬는 날. 연휴가 겹쳤습니다. 별로 마음 내키지 않아하는 아내를 채근해 가까운 절이라도 한 군데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서천에서 살 때니까 부여 무량사가 가까우면서도 익숙한 절이었을 겁니다.

사범학교 1학년 때 처음 수학 여행길에 찾은 절이 무량사였고 누이동생 희주의 남편이면서(그러니까 매제)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나중에 사법시험에 합격, 변호사가 되고 시인이 된 김기종(개명하여 김동현)이 공부하던 절도 바로 무량사였던 것입니다.

남한에서 제일 크신 토불을 모시고 있는 사찰. 부처님 오신 날이면 아그배꽃과 산철쭉 꽃이 마치 바닷물결처럼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신록이 밀물져 오는 곳. 무조건 내 생각만으로 여행을 떠나자 우겨 보았지만 여행비가 문제였습니다.

따져보니 수중에 가진 돈은 겨우 하룻밤 여관비와 두 사람의 왕복 버스비가 전부였습니다. 궁여지책으로 김밥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가는 날 점심, 저녁, 다음 날 아침까지의 김밥입니다. 꾸역꾸역 마른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며 그렇게 무량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돌아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었지요. 아내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아닙니다. 돈이 없어 기가 죽고 배고파 초라했던 행색과 마음이 거기 고스란히 남았을 것입니다. 서천에서 버스를 내린 것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각. 배가 몹시 고팠지만 밥 사먹을 돈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는 서점을 찾아들어갔지요. 조 씨란 성으로만 기억되는 퉁퉁하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경영하던 서림서점이란 곳. 안면이 있는 안주인에게 밥을 좀 달라 했지요. 먹다 남은 찬밥을 주더라구요. 배가 고프니 어쩝니까. 그거라도 먹을 수밖에요.

가난하고 구차한 청춘이여. 흔들리는 두 그림자여. 나는 이 시만 읽으면 눈물이 나려고 그럽니다. 시의 내용에서도 보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함께 산사의 돌계단을 오르다가 마지막 계단을 올랐을 때 한 사람인 ‘너’가 ‘훌쩍 하늘로 날아가 흰 구름이 되어버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악

이승과 저승의 이별이지요. 그러면서 흰 구름이 되어버린 사람이 오히려 땅 위의 사람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땅 위에 남아있는 사람은 ‘발을 구르며 땅에 서서 울고만 있’는 걸로 결판이 납니다. 하나의 상상이지만 많이 비극적이고 마음 아픈 상상이라 하겠습니다. 시의 구석구석에 이미지로 활용된 언어들이 여럿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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