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의 잼 있는 중국이야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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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25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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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家人" 손님으로 살아온 역사~2

커짜런들이 그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해외에 화교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커쨔런들의 특징을 알아냈다. 커짜런들은 같은 중국인들이지만 유난히 끼리끼리 잘 뭉치고, 자식들 교육을 독특하게 시켜 중국 역사속의 위대한 지도자들로 키워냈다.

커짜런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은 현재 광똥의 梅州로, 전체 인구의 50퍼센트 이상이 가족을 해외 화교로 두고 있다고 한다.  커쨔런의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고, 목수, 대장장이, 상인, 군인, 정치인 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

이들은 봄에 씨 뿌리면 가을에 그 곡식을 먹을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는 까닭에 손과 입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벌어먹을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기술자들, 장사꾼, 정치인들이 많아 졌다.

손과 입만 가진 커쨔런들이 먹고살기 위해 나가다보니 자연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남아에 널리 퍼지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동남아에 흩어지게 된 과정이 참혹하기 그지없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커쨔런들은 무조건 바다를 건너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이들은 짐짝처럼 선창에 갇힌 채 며칠씩 지내야 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대 소변을 자기 옷에 싸면서 지냈고, 죽어가는 사람도 허다했다 .

그들의 과거별명은 ‘卖猪仔(팔려가는 돼지들)’이었지만, 그들 스스로는 "水客"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바다를 건너 동남아로 나가 화교가 된 커쨔런들이기에 생활력은 무섭기 그지없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 화교들이 천부적으로 장사에 소질이 있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사실은 죽음의 언저리에서 살아난 사람들만이 지닐 수 있는 생활력이 동남아 화교의 밑천이었다.

때문에 화교 커쨔런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고향이 어딘지를 늘 후손에게 전수한다. 또 '客家话'를 할 줄 아는 것을 자랑처럼, 신분증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을 “중국”이라 부르지 않고 "唐山"이라고 부른다. 이는 해외화교들이 애정을 담아 중국을 부르는 명칭이라 한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을 "唐人街"라고도 부른다. 물론 해외 화교 모두가 커쨔런은 아니지만 커쨔런의 단결문화와 고향에 대한 독특한 감정은 사실 동남아나 미국, 유럽 등 화교들 모두에게 전파되어 유달리 고향집착이 강하다.

중국본토를 기점으로 동남아와 전 세계로 흩어져 있는 화교들을 하나로 묶어 넣는 힘은 바로 이 어쩔 수 없는 향수이며, 이 어쩔 수 없는 향수의 발원지는 커쨔런들이다. “동남아 시장을 뚫으려면 화교와 시작하라”는 다국적 기업의 교훈은 바로 커쨔런들의 깔아놓은 향수의 인맥을 이용하려는 고도의 상업적 기술이다.

동남아 경제를 휘어잡고 있는 '热钱'은 바로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또 덩샤오핑의'改革开放'의 구호역시 커쨔런의 개척정신이 그 바닥에 깔려 있고, 정직과 근검으로 싱가포르를 만든 리꽝야오의 정치력 역시 커쨔런 특유의 짠돌이 생활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사는 게 뭔지를 아는 사람들이 중국인들이라면, 살아남는 게 뭔지를 아는 사람들은 커쨔런들이다. 동남아서 아주 잘사는 화교친구들은 말한다. "울 엄니, 아버지한테는 지문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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