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강/ 나태주

비단강이 비단강임은
많은 강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그대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백 년을 가는
사람 목숨이 어디 있으며
오십 년을 가는
사람 사랑이 어디 있으랴……

오늘도 나는
강가를 지나며
되뇌어 봅니다. (1984)

공주로 직장을 옮기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이제 40대에 들어섰습니다.

위로는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식들이 딸리고 옆으로는 아내와 형제가 늘어선 인생이 버거운 시기입니다. 날마다가 힘에 겹고 어깨가 무겁고 발길 또한 무거워 가끔은 발등이 붓는 나날입니다.

30대 후반부터 혈압 강하제를 먹어야 했으므로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으로 살아야했습니다. 무엇 하나 자유롭지 않아 탁 부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돈벌이를 해야 생활이 유지되므로 교직은 직업(職業)이고 시 쓰는 일은 내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본업(本業)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입니다.

직업과 본업의 차이. 무엇이 거기에 있겠습니까?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만 정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교직과 시업을 똑같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직성장에도 마음을 주어 끝내 학교에서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나는 정말로 1989년도는 교감이 되고 1999년도에는 교장이 되기도 했지요.

이렇게 직장생활, 문단생활에다가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또한 함부로 내박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서 나는 내 자식들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공주에서 활동하는 여러 가지 문화 활동에도 짬을 내어 참여하곤 했습니다. 몸이 둘이라도 어려운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했기에 아이들은 나름 잘 자라 국립대학에 모두 진학,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해주었고 나는 나중에 공주문화원장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관여하여 창립한 단체가 여럿이고 맡은 소임도 여럿입니다. 공주문인협회 초대간사, 대전과 분리된 후 충남문인협회 2대회장, 공주녹색연합 초대대표, 충남시인협회 2대회장 등이 그동안 머물었던 사회 문화적 자리입니다.

1984년이면 만 나이 39세 때입니다. 대학원 공부를 새롭게 시작했으므로 날마다 어깨에 멘 가방이 무겁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팍팍한 다리를 이끌며 자주 후유, 깊은 한숨도 내쉬었을 날들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던 출근길. 오가며 바라보던 금강. 금강에 나의 마음을 맡기면서 이런 글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런 때 금강은 차라리 자연물이 아니라 정다운 이웃이며 오래 전에 해어진 연인이며 지금도 그리워 보고만 싶은 그 어떤 사람의 대신입니다.

어미 처리가 특별합니다. ‘합니다’가 아니라 ‘합디다’입니다. 둔탁한 어법인데 이것은 짐짓 무관심한 척 남한테 들은 것처럼 하는 말투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면서 나날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금강의 시인. 대뜸 부여의 신동엽 시인입니다. 금강은 한국의 4대강 가운데 하나. 강물의 흐름이 유순하고 강변의 풍경이 비단 폭을 풀어놓은 것 같다 해서 예부터 ‘비단강’이라 불러온 강물입니다. 이 강가에 얼마나 많은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 왔겠습니까.

공주의 금강 가 석장리에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어 ‘석장리박물관’이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구석기 유물이 안 나와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 그러던 일본인들의 무엄한 사관을 보기 좋게 무너뜨려준 기분 좋은 현장이기도 합니다.

물론 금강 가에 살던 사람들은 두고두고 금강에 대한 시를 써왔겠지요. 가운데 신동엽 시인은 장시 『금강』으로 하여 걸출한 ‘금강의 시인’이 되었고 아예 금강은 신동엽 시인의 전유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금강’이란 이름을 비껴서 ‘비단강’이란 이름을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렇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금강이 집단사적인 금강이고 호흡이 긴 금강이라면 나의 금강은 개인사적인 금강이고 호흡이 짧은 금강입니다. 어떤 금강으로 갈 것인지 그것은 독자들의 선택사항입니다. 그러나 그 두 개가 공히 존재하는 금강이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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