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나의 시 '기쁨' 이렇게 썼다"
나태주-"나의 시 '기쁨' 이렇게 썼다"
  • 나태주
  • 승인 2018.06.12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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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나태주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1994)

나이 40을 지나 50에 가까워지면서 세상 사는 일들이 시들하고 마음의 동력이 떨어졌을뿐더러 점점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쌓여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일들이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고 후회스러운 일 또한 많았습니다.

그런 밤에 문득 집에서 기르는 난초를 보면서 쓴 글입니다. 아파트에 방이 세 개 있지만 두 개는 아이들한테 주고 안방은 아내가 쓰고 나는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자던 때입니다. 물론 책상도 거실 한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자다가 새벽쯤 잠이 깨어 일어나 멍하니 어둠 속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볼 때가 많았습니다. 거실의 한 귀퉁이 창변 쪽으로 난초화분이 몇 개 있습니다. 흐린 눈으로 그 난초화분이 들어옵니다. 난초는 이파리가 시원스럽게 뻗은 우아한 식물입니다. 조금만 건들여도 이파리를 크게 흔듭니다.

난초 이파리에 나의 무거운 마음을 실어봅니다. 난초이파리가 나의 마음을 받아 한쪽으로 기웁니다. 난초는 순간, 정답고도 고운 연인이 되며 살가운 누이가 됩니다. 믿음직한 이웃이 되어줍니다. 난초가 고맙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이 시를 보면 대번에 의인법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난초’와 ‘허공’이 교감하여 난초는 허공에 ‘몸’을 기대고, 허공은 난초를 ‘보듬어 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내가’ 여기서는 국외자(局外者)이고 방관자입니다.

이 시는 나에게 큰 용기와 보람을 준 작품입니다. 한 번 꺾여 바닥을 모르고 하강하던 내 시의 웨이브. 그것을 바짝 고삐를 잡아 일으켜 세워준 시가 바로 이 시입니다.

이 시가 수록된 것은 1996년도 발간된 『풀잎 속 작은 길』이란 시집. 이 시집을 받아본 백담사 회주(會主) 조오현 스님은 이 시를 지목하여 제2회 현대물교문학상을 받도록 울력해 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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