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방울처럼 모두모아 받치는 6월의 하지 감자꽃, 붉디붉은 앵두의 빛은 6월만이 허락한 붉은 빛, 반송 송화대 끝의 보라색 꽃은 6월만의 생명의 꽃이다.

눈을 떠 세상을 볼 수 있을 나이가 되서야 보게 된 그 무엇. 공주끝자락 소학길에서 유성 현충원까지 10여분 정도의 거리.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가끔 차에서 라디오도 끄고 성호를 그으며 잠깐, 아주잠깐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어느 죽음인들 설움의 공기를 매우지 않으랴만 더더욱 젊은 순국선열들의 죽음은, 하지 감자 꽃처럼, 붉은 앵두처럼, 그리고 송화대 위에 핀 보라색 꽃 방울처럼, 고귀하고 고귀한 희생이었으리라.

가끔 머리를 정리하고자 할 땐 난 그곳을 찾아 참배를 하곤 한다. 정중히 손을 모아 걸으며, 정리가 잘된 묘비위에 내리는 햇살을 보며, 순간 나의 번뇌 또한 그 빛을 따라 소나기를 맞은 듯 한순간의 어렴풋한 선(line)을 만난다.

질서란 삶 안에 있음인데, 그 질서가 어찌 삶을 놓아버린 것처럼 난 허둥대는 것일까. 결국 찾고자 함이 내안에 있는데 그것은 간데없고, 밖의 무질서 속에 버려진 것처럼 그 소나기 같은 설움, 설움이 섞여 땅을 적신 흙 내음, 그것은 나의 눈물이 되어 나를 그곳에 서게 한다.

잠시 머물러 주의를 둘러본다. 무엇인가 보이는 듯한 느낌. 귀한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보여준 듯하다.

질서라는 사진 한 장을 말이다. 겨우 가드라인 안에 걸터 서는 느낌처럼 그저 흔한 쓸데없이 버려진 나무와 같이 난 그냥 서 있다.

무엇을 본 것일까. 그 어마어마한 애국이란 것은 아닐 테고, 나는 그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본 것임에 틀림없다. 모양도, 색도, 향기도 없었다.

다만 6월 여름을 시작하려는 햇살아래 소나기가 지나간 것 같은 흙냄새가 연상되었을 뿐 그 어떤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무거웠고, 머리는 코밑까지 연결되어지지 않은 무거움으로 가슴은 구멍하나가 뚫린 듯 허했다. 그리고 집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난 내가 찾던 질서 안에 들어온 듯 했다.

앞마당 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말없이 걸었다. 뾰족한 돌바닥을 인식시키는 그대로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것을 동작치유의 열아홉 번째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해보기 : 손을 앞으로 또는 뒤로(뒷짐 지듯이)하며

길 모양을 인식해 길을 따라 걷는다.

천천히.

이때 주변의 것과 소통하듯 하나도 빠짐없이 살펴본다.

뱀 딸기, 훌쩍 자란 쑥대, 질경이, 망초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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