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사랑해나무를 그리다가끝내 나무가 되어버린 사람산과 들과 강물을 사랑해산과 들과 강물을 그리다가끝내 산과 들과 강물이 되어버린 사람그를 우리는 오늘화가라 부른다공주의 화가를 넘어대한민국의 화가라 부른다.
아버지 아버지먼 산만 바라보시고어머니 어머니웃기만 하시고누이야 누이야너는 예쁘기만 하여라봉숭아꽃 아래옹기종기 장독대 근처얼룩 돌 갈고 갈아너의 얼굴 비칠 때까지돌 거울에 그림 속에영원의 하늘 속에.
어머니 가시지요 어서요어디를?저∼기요 귀가 절벽이신 어머니와땅거미 질 무렵급한 마음으로 실랑이한다 안 간다 안 가82년 사신 집인데그리 쉽게 나설 수 있겠는가 어머니 저희 집으로 공주로요잠시 망설이다일어서시는 어머니 얘야 이 길은 공주 가는 길이 아니야시어머니 요양원 들어가시는 날대답이 막힌다. 내가 왜 이런 악역을 맡았을까?
그랬지요 그랬었다지요기미년 100년 전 삼일운동 일어나던 날태극기 느닷없이 들고 나와대한 독립 만세!목청껏 외쳤던 날 까마득한 옛날이야긴 줄 알았는데공주 거리에서 시장에서공주사람들 구름 떼로 모여독립선언서 다시 읽고대한 독립 만세 다시 목청껏 외치며 공주 사거리로 대통다리 제민천 건너옛 충청감영 터 충남도청 자리공주사대부고 정문 새로 세워진포정사 앞까지 떼를 지어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태극기 흔들며 행진하는 거 따라가며 보다가 그만 울컥눈물이 솟았지 뭡니까바다 울렁임으로 출렁대는 가슴흰저고리에 검정치마 갈아입고유관순 아니라도 유관
울면서 먹는 밥울면서 자는 잠울면서 하는 말울면서 부르는 찬송.
어머니 마지막 며칠비몽사몽 간 병상에서 하는 말씀금매 가자 금매 가자어떻게 억지 좀 해봐억지로라도 휠체어 빌려 타고금매복지원 마지막 몇 달 보내신 곳따뜻하고 조용한 그 곳데려달라는 소원 들어드리지 못해미안합니다많이 속상합니다금매 가자 금매 가자휠체어 빌려 타고 금매 가자그러세요 어머니이제는 휠체어 타지 말고새색시 때 입었던 것처럼유똥 치마저고리깨끼 치마저고리 곱게 차려입고옷고름 산들바람에 날리며 가세요하늘나라 먼저 가서 기다려주세요.
어머니 돌아가시면 가슴속에또 다른 어머니가 태어납니다 상가에 와서 어느 시인이위로해주고 간 말이다 어머니 어머니 살아계실 때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부디 제 마음속에 다시 태어나어리신 어머니로 자라주세요 저와 함께 웃고 얘기하고먼 나라 여행도 다니고 그래주세요.
딸 많은 상가집 남편 잃은 딸이 제일 크게 울고가난한 딸이 그다음 울고병든 딸은 울지도 못한 채엎드려 있기만 했었다.
형님형님새벽에만일찍깨어목이메는 형님한분내게있어그얼마나다행인가 오늘이사울어머니다시땅이되시는날 마음깊은형님위로천금보다귀합니다.
누님!이제는정말로 이제는 누님이 어머니가되어 주시어야하겠습니다 저는,어머니 없이는살지 못하는아들이랍니다.
신발신발 바닥이 많이닳았겠다 내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너 또한 내게로 오지 못해문밖에 서서 바장이다가안달하다가끝내 오지 못한 마음 다시 신발이나 한 켤레사서 너에게보내줄까 그런다.
어머니 친상을 당해찾아오는 손님들마다 큰절을 드렸다옛날 예법 그대로 미안하고죄스런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처음엔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긴 했지만궁둥이를 조금 들고 큰절을 했다자세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했다보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왜 사람은 절을 할까?나는 당신의 적수가 아닙니다나는 당신에게 이미 졌습니다나는 온전히 나를 내려놓습니다그런 뜻으로 절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하다절을 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는 없다생각 끝에 궁둥이를 더욱 내리고납작 엎드려 절을 하기로 했다마음이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될수록 납작 엎드려 절을 드려라그것
고마워 형제형과 아우왜 그런가? 마음 아플 때그 마음 알아주고배고플 때그 배 채워주는 게형제 아닌가 나 비록 그대마음 아플 때알아주지 못하고그대 배고플 때배고픈 배채워주지 못했지만 오늘 나 아픈 마음그대가 알아주니그대 분명 아우일세고마워 민망하게도많이 고마워 앞으로 우리 오래형과 아우 함세서로가 심복이 됨세.
너무 늦게 어머니를잃었습니다너무 늦게 슬픈 아들이되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아픕니다그래도 하늘이 허전합니다땅이 쓸쓸합니다 이제는 허전한 하늘이 되신어머니쓸쓸한 땅이 되신어머니 그 어머니 모시고천천히, 부지런히잘 살겠습니다고맙습니다.
“시는 뺄셈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지나고 보니 인생도 뺄셈이었다핸드폰에서 지워지는 이름과 전화번호들옆자리에 앉았다가 떠난 여러 명의 친구와 이웃들 오늘은 어머니를 땅에 묻고 아버지를 병원에힘겹게 모셔다 드렸다어금니 하나를 뽑은 셈이고어금니 하나는 병원에 맡긴 셈이다 늦은 발치지만 많이 시립고 아프다멀지 않아 또 하나 어금니가 뽑힐 때는더 아프고 힘들 것이다인생의 뺄셈은 언제까지 진행될 것인가? 나마저 지구에서뺄셈으로 끝날 때비로소 정답은 나올 것이다.
대숲 아래서/ 나태주 1바람은 구름을 몰고구름은 생각을 몰고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2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3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4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소리만이 내 차지다.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돌계단/ 나태주 네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지.돌계단 하나에 석등이 보이고돌계단 둘에 석탑이 보이고돌계단 셋에 극락전이 보이고극락전 뒤에 푸른 산이 다가서고하늘에는 흰구름이 돛을 달고 마악떠나가려 하고 있었지.하늘이 보일 때 이미돌계단은 끝이 나 있었고내 손에 이끌려 돌계단을 오르던 너는이미 내 옆에 없었지.훌쩍 하늘로 날아가 흰 구름이 되어버린 너!우리는 모두 흰 구름이에요, 흰 구름.육신을 벗고 나면 이렇게 가볍게 빛나는당신이나 저나 흰 구름일 뿐이에요.너는 하늘 속에서 나를 보며 어서 오라 손짓하며 웃고나는 너를 따라갈
내가 너를/ 나태주 내가 너를얼마나 좋아하는지너는 몰라도 된다.너를 좋아하는 마음은오로지 나의 것이요,나의 그리움은나 혼자만의 것으로도차고 넘치니까……나는 이제너 없이도 너를좋아할 수 있다. (1980)이 시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작품입니다. 본래는 1980년도에 낸 연작시집 『막동리 소묘』에 실린 사행시 가운데 한 편입니다. 그 시집은 시의 제목은 없고 모두가 번호로 되어 있습니다. 총 작품 수가 185편인데 위의 작품은 그 중 172번입니다.막동리 소묘 · 172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너를 좋아하는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나태주 사랑하는 마음내게 있어도사랑한다는 말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사랑한다는 그 말 끝까지감당할 수 없기 때문모진 마음내게 있어도모진 말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외롭고 슬픈 마음내게 있어도외롭고 슬프다는 말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삽니다모진 마음을 달래며삽니다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숨기며 삽니다. (1984)문학성장보다는 교직성장에 힘쓰며 산 결과, 초등학교 교감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