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 갱신을 하는 신체검사를 하고자 해당 병원에 가니 몇 가지 점검을 하는데 시력이 얼마인지 측정하는 검사가 나옵니다.?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편하다 여겨져서 있는 안경도 사용하지 않는데, 시력 점검을 해 보니 육안으로는 면허증 갱신이 안 된다고 나옵니다.?안경을 쓰지 않고 운전하거나, 책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도?법규가 그렇다니 우선 남의 눈이라도 빌려서 통과를 하고, 절에 돌아 와 안 쓰던 안경이나마 다음을 위해서 찾아 놓으려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하루 종일 이방 저방,?이 서랍 저 서랍을 뒤지며 영 보이지 않기에 “할 수 없구나. 언젠가 자연스레 눈에 뜨이겠지” 하고 포기를 하였는데, 포기를 한 순간 돌아다 본 곳에?안경이 나를 보며 "
차 한잔에사람들 마음이 열리고?차 한잔에서먹한 자리가 풀립니다.?차 한잔에어색한 만남이 부드러워지고?차 한잔에온몸의 기운이 조화로워 집니다.?요 며칠 재를 지낸 후나부처님을 참배 차 오신 분들에게차 한 잔을 내어 드리면‘물이 흐르는 곳에 꽃이 핀다’는수류화개의 이야기처럼마음속에 묻어 둔 꽃 한 송이가피어나는 것을 볼수 있어서 좋습니다.?어떤 이는 “절에 왔다가스님한테 차를 얻어 마시기는 처음“이라며“너무 좋고 고맙다” 이야기합니다.?요즘은 보이 숙차 대신에봄기운에 맞게 생차를 내고 있는데,차가 익을만큼 익어서 그런지첫잔이나 마지막 잔이나차향은 그윽한 맛 그대로여서‘다반향초’라 하는 말씀이여기서 나온 것
허리가 90도로 굽으신연세 여든 다섯의 노보살님이정초에 다녀가지 못하셨다며 오셨습니다.?숨이 가빠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시면서도그동안 미처 동참하지 못한 정초기도며안전운행 노제비와 가족들 앞으로 밝힌인등비등을 내놓으시고는 스님이 기도 잘 모셔달라하시며 금방 일어서시려 합니다.?뭐 집에 바쁘신 일이 있느냐 물어도서두르시기만 하기에 일단 앉으셔서드리는 감로수 한잔 드시고 숨을 고르신 후에내가 집앞에까지 모셔다 드릴테니 염려마시라하고 안심하시도록 하였습니다.?스님은 바쁘실텐데 어찌 나를 데려다 주느냐버스 타는 곳까지만 데려다 주어도 좋다 하셔서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한참을 어렵게 걸어 오신 보살님도 계신데아직은 젊은 사
'농촌의 피폐는 극도에 달하여날이 갈수록 파산을 당하고생활을 계속할 길이 없어 남부여대하고다연한 향토를 떠나 산도 설고 물도 설은 이역인남북만주의 황야와동으로 일본 노동시장에 생도(살 길)를 찾아몰려가는 비정한 현실에 있어공주에서도 생명같이 알며 작업하던 소작지를 버리고 일본으로 이거한 자가...'?1929년도 공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노동자로 살았던 사람들의 숫자가2월 말 현재 일천 칠팔백명에 달하고매일 일본으로 가겠다고 신청하는 이가평균 다서 여섯명이라 하니공주에 많은 사람이 살던 때도 아닌데얼마나 살기 어려웠으면 원수의 나라 일본으로먹고 살기 위해 떠나야만 했는지참으로 마음 아픈 기사입니다.참여문화 연구소(구 이야기 가게)지수걸교수가 수
제2회 공주 사지 순례팀들과 함께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에 있는 청림사지를 다녀왔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바와 같이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탑과 부도가 오랜 세월의 풍상 속에 많이 마모되고,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위풍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지난해는 영국인 스님이 살더니, 오늘은 가보니 근대에 새로 개창한 스님의 상좌스님이 살고 있습니다. 탑신이나 개석등에 대한 정밀한 진단과 보수가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다음 정치리 사지를 가려다가 우선 부여로 나가 모처를 들르니 새끼를 꼬는 기계틀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 그곳에서 단기 4291년 서기 1958년 부여중학교 8회 졸업 앨범과 1967년에 나온 부여 합송초등학교 1
? 위의 신문 기사는 자선사업을 많이 하셔서 '현세의 활불' 즉 살아있는 부처 소리를 들은 공주시 사곡면의 박인묵 거사님 미담입니다.1924년 2월 24일자 동아일보 기사인데, 230가구에 대하여 벼 한말씩 나누었다는 내용으로, 찾아본 결과 기사가 나온 날은 음력으로 정월 스무날에 해당합니다.아마도 설날을 맞이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나눈 것이 후에 기사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아래 기사는 1938년 5월 14일 기사로, 박재연거사가 320명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벼 두말과 돈 10원씩을 나누어 주고, 극도로 빈궁하여 집집마다 내는 호세를 내지 못한 300여호에 대하여 세금을 대납하였다는 기사입니다.두 기사는 대략 십 수 년의 차이를 두고 났지만, 박인묵 거사와 아
설날이 되면 조상님 전에 차례를 모시고, 집집마다 모여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며,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어른들께서는 덕담을 해주시기도 하고, 떡국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세시풍속에 따라 놀이도 하는 등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명절입니다.이와 같은 의례는 절에서도 행해져 왔는데 그것을 ‘통알’ 혹은 ‘세알’이라는 이름으로 전합니다.석문의범에 따르면 통알通謁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의식문을 외우며 삼배를 합니다. ?복청대중 일대교주 석가세존전 세알삼배(伏請大衆 一代敎主 釋迦世尊前 歲謁三拜)복청대중 시방삼세 일체불보전 세알삼배(伏請大衆 十方三世 一切佛寶前 歲謁三拜)복청대중 교리행과 일체법보전 세알삼배(伏請大衆 敎理行果 一切法寶前 歲謁三拜)복청대중 대소선교 일체승보전 세알삼
경기도 고양에서 가족들과 같이 며칠 앞당겨 설명절 차례를 모시러 온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이와 형에게불전에 백팔배를 올리라고 시켜보니처음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절을 시작합니다.동생은 아직 체격이 작아서절을 하더라도 가뿐하게 하고 있는데상대적으로 제법 덩치가 큰 중학생 형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절하는 모습은엉덩이를 하늘로 치켜 올린 채 모양새가 영 예쁘게 나지 않습니다.그래도 할아버지 할버니가 계시고스님과 아빠와 큰엄마가 응원을 하니두사람은 백팔배를 무사히 마칩니다.할아버지는 모처럼 만난 손자들 열심히 절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지핸드폰에 있는 카메라로 연신 찍어 댑니다.나는 제사를 마치고 아이들에게부처님 전에 백팔배를 한 착한 사람들이라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황희 정승은 18년 간이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인품이 청렴 결백하여 청백리로 불립니다.그런데 정승의 아들 중에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아들이 하나 있어서술에 취하면 주사로 인해 민폐를 끼치게 되니그 아들 하나가 정승의 근심거리가 됩니다. 여러 번 훈계도 하고 때로는 매도 들었지만 아들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황희 정승은 방법을 달리 하고자여러가지로 생각을 거듭 하던 차에 어느 날 술을 마시러 나간 아들을 밤 늦게까지 마당에 서서 기다립니다.삼경이 가까워 정승의 어깨에 밤이슬이 내려 옷이 축축해질 무렵 술에 얼큰하게 취한 아들이 인사불성이 되어 비틀거리며 대문 안으로 들어섭니다.이것을 본 황희 정승은 아들 앞으
처사 박공인묵 자선 기념비?(거인치부 은급행려 적산시중 혜시곤궁자비*덕 종불훤방 충후심공 기공공동)?박인묵거사님의 비석 사진과 새겨진 글입니다. 오늘 마곡사를 다녀 오면서 사곡면에 차를 내리고 일행들과 같이 박인묵거사님의 비석을 자세히 살펴보고, 전후좌우의 길이와 높이 폭을 재 보았습니다.?전면에 거인치부로 시작한 글에 자비*덕이라고 읽고 소개를 하였는데 (*표는 글자를 못읽었음) 오늘 *표된 곳에 글씨를 확인하여 오랜 숙제를 해결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글씨가 영 불확실하여 나는 *로 남겨둔 것을 오늘 동행한 얼레빗 무형문화재 이상근 거사가 한눈에 읽어 냈는데 글자가 성품성性자입니다.?그러므로 이제 올바르게 읽어 보면 거인치부 은급행려 적산시중 혜시곤궁 자비성덕 종불훤방 충후심공 기
엇 그제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그램에 100세가 다 되시는 늙으신 어머니께서70여세가 가깝도록 몸에 장애로 인하여스스로 돌아눕지도 못하는 아드님을극진히 보살피며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차마 눈시울이 뜨거워져서두 분 모자간의 지극하고 위대한 사랑이얼마나 마음을 휘감는 감동으로 다가 오는지방송 시간 내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였습니다.어머니라는 이름의 고귀한 천사가관세음보살님의 마음처럼 세상의 고통을 보듬고천개의 눈과 손길로 아픔을 거두어 주시는 듯고맙고 감사하였습니다.그 여리 디 여린 몸 구십도 는 숙여진 몸으로거구의 아들을 먹이고 씻기고 대. 소변을 받아 내며 운동시키면서도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늙으신 어머니는 말하십니다.“이렇
盡日尋春不得春[진일심춘부득춘]芒鞋踏遍?頭雲[망혜답편농두운]歸來笑拈梅花臭[귀래소염매화취]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은 만나지 못하여짚신 신고 산 머리 구름까지 두루 살폈네돌아오며 웃음띠고 매화꽃 잡아 냄새맡으니매화 가지끝에 이미 봄이 가득하구나?杖藜踏破萬重山(장려답파만중산)終日尋春不見春(종일심춘불견춘)歸來持把梅梢看(귀래지파매초간)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명아주 지팡이(청려장) 짚고 이 산 저 산 다니면서종일토록 봄을 찾아도 봄은 보이질 않네!돌아오면서 뜨락의 매화가지 만져 보니봄은 벌써 매화 꽃망우리에 가득 차올랐네?尋春莫須向東去(심춘막수향동거)西園寒梅已破雪(서원한매이파설)萬像從來一徑通(만상종래일경통)但緣分別
가정에 불화가 끊이지 않는 집 가장이 친구 중에 화목하기로 소문난 송씨를 찾아갑니다. “이보게 친구, 자네 집은 화목하기로 소문이 나서 세상 사람들이 다 칭송하니 비결이 무엇인가?나도 배워서 우리 집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네.”그러자 친구는 대답을 하는 대신 큰 아들을 불러 “얘야 오늘은 송아지를 지붕에 올려야 겠다”고 말하니 아들은 “예 알겠습니다” 하고 나갑니다.한참이 지나서 밖이 소란스러워 내다보니 그 집에 부인과 아들 며느리 어린 손자까지 나서서 송아지를 어떻게든 지붕에 올리려 애를 씁니다.이것을 보던 송씨는 잠시 후에 “아들아 그만하면 됐다. 다들 들어가도록 해라”하니 가족들은 저마다 하던 일로 돌아갑니다.송씨는 친구에게 “자네 보았는가?” “우리는 그저 이렇게 사는 것일 뿐이라네”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한두 분, 혹은 두세 분 씩 여러분들이 여러 차례 다녀가셨습니다. 방문해 오신 분들마다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근황을 물으니 “좋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분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힘들고 어려워 마지못해 살아 갑니다”하는 듯한 대답을 들으며 마음이 먹먹합니다.살 맛 나는 세상 만들기에 국민 모두가 기쁘게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사를 하나 소개합니다.한나라 때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답니다.楚나라 장수 자발(子發)이 진秦을 공격하다가 초나라 군대는 식량이 떨어지게 됐고, 병사들은 콩 알갱이를 나누어 먹었지만, 자발은 그 때에도 진중에서 하루 세 때 고기와 좋은 곡식을 먹습니다.어찌됐든 자발의 군대가 진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귀환하자 그의 어
자주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치심 가운데 '소욕지족' 하라는 가르치심이 있습니다.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라는 의미인데, 지나친 과욕이나 소비로 인하여 자신과 가족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사람에게 좋은 치유의 방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이미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데 충분하여 부족함이 없는데, 사람들의 욕망의 보따리는 자꾸만 커져 가니 이것이 만족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세상이 만들어 내는 큰 병통입니다.존경받던 어느 노스님은 年初가 되면 절을 찾는 이들에게 ‘몸에 지니면 부자가 되는 부적' 이라 하여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는 글자를 형상화한 글씨를 써서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합니다.네글자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입구口자를 가운데 놓고 좌측에는 지知자를, 우측에는 유
당나라 문종황제는 불교에 귀의하고 일체 육식을 끊었지만, 평소 좋아했던 조개(대합)만은 끊지 못해 수랏상에는 조개가 항상 올라왔습니다.그러자니 신선한 조개를 황제에게 진상하느라 관리와 어민들의 고달픔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어느 날 황제가 식사를 하는데 조개가 벌어지지 않아 억지로 열어보니 빛을 발하는 관세음보살이 나옵니다.깜짝 놀란 황제는 무슨 까닭일까 싶어 평소 존경하는 스님을 청하여 물어보니 '심성구고하고 현응방소하는 마음으로 “중생의 부름에 32가지 상으로 현신하여 중생의 고뇌를 제도하리라 하신 관세음보살 자비에서 보이듯 신심 깊은 대왕께서는 조개마저 끊으라 하시는 성현의 가르침인가 합니다”라고 말합니다.문종 황제는 그 길로 조개 먹는 것을 끊었고, 곳곳마다 관세음보살의 성상을 모신 법
많은 사경을 넘으면서 독립 운동가를 접해본 김투사(김형극)는 33인중의 한사람인 만해 한용운을 단연 최고로 꼽는다.독립투사 일송 김동삼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 끝에 사형을 당하자 일제 당국은 시체를 5일 안에 인수토록 했으나, 어린 자식 외에 연고자가 없었고, 모두 인수를 꺼렸다.그때 만해는 이 시체를 인수해 자기 안방에 안치해두고 3일장을 치렀다. 장례비는 백산(안희제)이 200원을 냈고, 인보 김병로, 이인 씨 등이 문상을 왔었다.1938년 상해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잠입한 그는 경남 사천군에 있는 다솔사에서 만해의 회갑연을 맞아 백산과 만난 일이 있다.이때 만해는 1년은 72후 1후는 5일이며, 양36 음36으로 되어 있다. 양은 일日이고,음은 월月을 뜻한다.따라서 양으로
?일반적으로 공주 곰나루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 남자가 어쩌다가 암곰의 굴에 붙잡혀가서 부부가 되어 살다가 자식들도 셋이나 낳았지만, 남자는 곰의 남편으로 사는 것이 마땅치 않아 몰래 강을 건너 사람들 세상으로 도망칩니다.늦게 그것을 알아차린 곰은 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을 차례대로 강에 던지며 돌아오라고 위협하였으나, 남자가 돌아오지 않자 스스로 강에 몸을 던져 죽어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곰의 나루’라는 이름의 ‘곰나루’ 즉 ‘웅진熊津’이라는 지명이 생겨납니다.여기까지는 공주에 사는 이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대부분 아는 것인데, 남자가 곰에게 붙잡히기까지의 이야기는 별로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앞의 이야기를 해보려 하는데 그 전거는 아래 신문기사에서 찾아집니다.
어느 스님이 신심 있는 신자의 공양을 받아 수행 하는 중에 어느 날 신자의 집 앞을 지나다 모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습니다.신자는 딸에게 자신이 없는 시간에 스님이 탁발 오시면 귀하고 맛이 좋은 갖가지 공양을 올릴 것을 지시 하는데, 정작 자신이 외출 후에 돌아오면 무엇을 드실 것인가 하는 딸의 질문에 “찬밥과 거친 음식도 좋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그 말을 듣고는 스님은 그길로 자신의 처소에 돌아가 저 신심 있는 단월의 공양을 받기에 자신의 수행이 아직 부족함을 부끄러워하며 바로 마음을 닦는 수행에 들어가서 그 집중력으로 오래지 않아 도과를 성취하여 응당 공양 받을 만한 자라 불리는 아라한과를 이루니 그 때가 다음 날 탁발을 나가기 알맞은 시간이었다고 합니다.그렇게 마음 닦음을 면밀히
오늘 어느 보살님께서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십 수 년 전에 가족 중에 몸이 아파 약은 지어 드셨는데, 형편이 어려워 약 대금을 내지 못하였다”며 그때 그 약값을 가지고 절을 방문하신 것입니다.나는 너무나도 뜻밖인지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기억도 못하는 일을 보살님은 그것을 기억하고 계시다가 자식들에게서 용돈을 받은 것을 모아 두었다가 이렇게 가져오신 것입니다.마치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큰 선물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산타처럼 보살님의 방문은 그러했습니다.보살님은 “그때 형편이 어려워서 약값을 못 냈지만, 그 약을 먹고 가족들이 건강을 회복해 지금은 잘 살고 있다”시며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습니다.잊지 않으시고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