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비 보슬보슬마음 찢어질 것 같아강 거슬러 올라가네 -어찌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지거미줄에게 비의 이유 묻네안부인사찾아올 약속 없이강기슭은멈춰있는 구름에 비스듬히 기대어 일까저녁 종소리은은히불쌍하다정이 깊어사월 산 생각 강 마음도 그럴까 - 어찌 순간 그런지조용히 보슬보슬 -다 젖었는데 사월 어찌 이런지 모르겠다종소리은은히불쌍하다 아직 정이 깊어
묵언으로 차 우립니다물 끓이면 시간 걸리겠지요함께 더 있으려천천히 하렵니다그대 푸른 이마 선선하여빈 방 물 따르는 소리푸른 빛 비친찻잔 스민 온기 건넵니다마음이 향으로 날아올라도잎이 떨어지듯 나락나락 내려앉아도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자 지긋 눌러 봅니다그대 눈에 내린 안개새가 되어 숲으로 날아가고뒤 곁 바람 스치는 대나무찻상 위 글썽이는 모란꽃 되니실없이 찻잔을 감싸한가히 웃습니다그대 눈매 쌉싸름하니 끝에 남아살짝 날개 짓아파도차 오래 끓어 기쁘네요.
너는 몰랐겠지너는 모르지 파도에 쓸려 묻히는 모래처럼물들어와 잠긴 해초와 따개비처럼소금창고 기댄 햇살시간 멈추어공간이 생겼네그 동굴에 상상이 내려 앉아하루가 생겼네집을 짓네나만의 추억 나만의 이야기인데한 인생 푸르게 더 사네 나도 몰랐지그런 줄 몰랐지누군가 나 소중히 바라 있으니자신을 사랑하시라 속삼임
수심을 알 수 없는 금강 가한 무리 철새가 갈대 숲에 앉았다 머뭇거리던 발길홀리듯 따라나서는데이를 어쩌나, 순간 늪에 빠져 버렸다 그 여름뜨거웠던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시든 이파리마저 낙엽으로 지고 있는데어쩌자고 이 가슴은 너만 보면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건지 강에 뛰어든 뭉게구름 사이로휘젓는 저 빈 손짓입술을 깨물어 부르튼 날에도화려하여라! 시나브로
허름한 선술집에 마주 앉아 찌그러진 양은 냄비 속 오천원짜리 김치찌개 돼지비계 몇 쪽 두부 몇 점사기잔에 붉은 립스틱 자국 마셔 버린 짜릿한 전율 그대의 유혹이었다면 기꺼이 작은 몸 흔들어 젖었을처음 보는 그대가 낯설지 않은 까닭이었어빗속을 달려온 밤 여윈 어깨 칭칭 감아 째깍째깍 귓전을울리는 뜨겁고 매콤했던 향 내음천연덕스런 미소 아른거려 뒤척이는 새벽
뜻밖이어서 설마 하였고, 상식 밖이어서 오히려 측은하였다.본디 우리 민족은 개결(介潔)한 성품이 있어 악은 용서하여도 몰염치는 보아주지 않는데, 이준원 (전)시장은 무슨 미련이 그리 많았을까? 아직은 아닌데.허물은 잊히기는 하여도 쉬 씻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잊힌다는 것은 구원의 길이기도 한 것인데 이준원 (전)시장은 무엇이 그리 급하였을까?이준원 (전)시장이 공주문화재단 대표가 되는 순간 그는 뻔뻔한 사람이 되었고. 그를 임명한 최원철 시장은 단순 무도한 사람이 되었으며, 교육문화도시 공주의 이미지는 땅에 닿았다.그리고
공주문화재단 대표이사와 관련해 소문이 몹시 뒤숭숭하다. 새롭게 선출된 시장이 문화재단을 문화관광재단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명분으로 현 공주문화재단 대표이사를 교체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단지 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다.만약 사실이라면, 공주시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미 다른 지역의 문화재단들도 정권이 바뀌자 문화재단의 수장을 교체했고, 그 결과 시민의 혈세를 투입해 만든 문화재단이 망해 버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이는 공주문화재단 설립 당시에도 문화예술인들이 가장 큰 우려를 했던
게리 스콧(Gary P. Scott)이 쓴 책으로 ‘인생의 정상에 서기 위한 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벌써 오래된 책인데 일반적인 인생 성공전략에 관한 책인 줄 알고 제쳐두었다가 들춰보니 대단한 국제 산악가이드이자 암벽등반가 20년 넘는 세월 동안 히말라야를 서른 번 넘게 등반한 걸 포함해서 세계 각 지역에서 탐험과 등반을 계속한 대단한 사람이 직접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었다.“우리의 인생은 진정 커다란 산이다” - 서문 중에서저자는 필생의 꿈인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우친 10가지 교훈을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게 하리라”(창세기1장 29절)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28절에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복을 누리고 살게 하셨다.그리고 29절에서는 먹거리를 주셨다. 모든 채소와 과일나무를 먹거리로 주셨다고 이르셨다.위에 인용한 1장 29절의 말씀에서 ‘모든 채소’란 말이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로는 약초(藥草)에 해당한다.킹 제임스 번역판에서는 이 채소를 〈Herb허브〉로 번
일본인 의사 나가오 가즈히로 박사가 쓴 책 가 있다.이 책에는 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100년 전의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하여 하루 3만보를 걸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떨까?걷지 않게 되면서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우울증, 불면증, 변비, 아토피, 치매 등의 온갖 병에 시달리고 있다.걷지 아니하고 음식이 바뀌면서 건강을 잃게 되고 행복한 나날을 잃어가고 있다. 걷지 않으면 병들게 된다. 사람들은 아파서 못 걷는 것이 아니다. 걷지 않
기다림이 있는 홑잎 나물설렘으로 충만한 미나리자신도 모르게 힘이 분출되는 구기자들판에 널려있는 에너지 버스내 안에 품는 자가 임자
순간이 스쳐가며흔적을 남기었다 여기 내 곁에잠시 머물렀다그러나잡을 수 없는 바람 그저 가만히 서서바라볼 뿐살그머니 어깨에기대어보더니온기만 남기었다
비니쿤가는 최근에 많이 알려진 관광지이다. 쿠스코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고, 교통편이 어려워 많이 오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관광객이 많다.이곳은 5,000m가 넘는 곳이라 오르기가 쉽지 않다. 걸어야 하는 길도 길지만, 고산증이 심해 재촉하여 걷기가 무척 힘든 곳이었다. 평소에도 오르는 것이 힘든 내겐 더욱 힘든 곳이었다. 결국은 중간에서 말을 탔다.힘들어서 산꼭대기만 쳐다보며 간신히 걷고 있는데 잉카인이 말을 몰고 와서 타라고 한다.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탔다. 잉카인의 발걸음은 가벼운데 말도 지치는지 중간중간 쉬
세계 10대 절경에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이곳 트레킹 코스는 전문적으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곳으로, 보통 7박 8일 정도 하는 곳이다.오늘은 종일 트레킹을 하는 날로, 가장 쉬운 구간을 온종일 하기로 했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기대하고 온 이곳은 버스를 한참 타고 가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한국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 더 좋았다. 늘 알프스산 같은 곳을 하루종일 돌아다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은 종일 트레킹을 한다니 얼마나 좋은가.종일 트레킹을 하기 위해 미리
작은 뜰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매번 새삼 느낀다.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수록 손바닥 만한 집 앞에 뜰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질 때가 많다.어느 날 아침 나의 일터인 로 출근을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작은 뱀딸기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수줍은 노란 꽃들이 지고난 뒤 내 손톱만한 크기의 무르익은 딸기들이 올망졸망 맺혀 있는 게 아닌가.조그마한 딸기알들이 가득 열리면 우리 집은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몇 해 전 장미과의 들풀인 뱀딸기를 구해 처마 밑에 한 줄 기차처럼 길게 심어놓고 조바심을
보릿고개 가마솥에 밥을 지어객식구들 고픈 배 채워주고기백이 대쪽 같았던 어머니 종부의무게에 짓눌려 갈지자로 휘어진 척추 시든 풀잎처럼방바닥과 한 몸 되어누워 계신 데 깃털같이 가벼워진 몸으로어찌 붉은 동백 꽃잎 떨구시는지 황혼 녘의 구순이라 하지만 뒤돌아보며 쉬엄쉬엄부디 먼 길 서두르지 마시어요
나는 마음이 슬퍼질 때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혼자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다. 말을 많이 하고 나면 후회하는 편이라서 차라리 고독을 택한다.작년부터는 미스터 트롯 출신 가수 임영웅의 노래에 푹 빠져 있다. 그전에는 거의 트롯을 듣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이 가수의 노래는 마음에 위로를 준다.같은 노래를 몇 번을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좋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런 현상은 나 말고도 전국의 수 많은 여성들이 그의 노래에 빠져 있는 것 같다.심지어 열성 팬들은 매일 멜론 같은 사이트에서 노래 스트리밍은 기본이고, 콘서
나는 몇 년 전 요양병원에서 일 년 넘게 조리원으로 근무했다. 덕분에 노인들의 다양한 삶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고, 그 경험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나의 첫 근무지는 내가 사는 가교리 마을, 우울증을 앓고 계신 00이 할아버지 댁이었다.당시 가교리는 장기 요양을 받는 대상자가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요양사의 활동이 생면부지의 일이었다.센터를 통해 00이 할아버지 댁으로 출근이 정해지면서 시어머님과 남편의 반대가 심했다.남편은 “두 분의 불
외할머니 떠나신 후그리움 대신유품이라도 만져보고 싶더라번듯한 유품도 없지만남겨놓지 못해서 자책을 많이 했어 여우목도리 하나 있었는데그마저 주인 없어 그런지금방 삭아 찢어지더라그래도 깊은 내 마음에 간직해 두었으니더 깊은 곳 어디 있겠는가 나보고 남들이탐날 물건 하나 없이 살았다는데칭찬인지 흉인지는 모르겠어그 말도 맞아 변변한 것 하나 없으니너희들 빼놓고 별것 없지 그래서 엄마는삭지 않는 글을 쓰고 있단다
나는 금강을 가로지르는 대전과 세종을 오고 가는 택시 운전사였다. 일선 현장에서 일반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택시 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고충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것.그리기위해 정밀검사, 자격시험, 교육 등을 거쳐 택시 운전자격증을 취득해 영업용 택시근로자들의 애환을 직접 경험했다.그러면서 각종 교통표지판의 적정 설치 여부, 교통신호등 연동체계, 주ㆍ정차 금지구역 지정 적정 여부 등 교통안전 시설과 불편 사항에 대한 시민의 다양한 의견과 세종시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교육 정책에 대하여 여론을 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