짹?짹?짹--짹. 참새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달라진 밖의 변화를 느끼게 해줍니다.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는듯한 참새의 울음소리는 지구의 큰 숨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에구나 싶어 가까이 내려다보니 제가 그만 싹을 밟아 버렸군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벌써 나오셨는지 몰랐어요.”작약이 봄소식을 전하려 땅을 뚫고 안주인을 보고 있었지만, 무딘 이 사람의 눈에는 땅만 보였습니다.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줄 아는 그런 눈 말입니다.다만 잠깐 둘러볼 생각으로 슬리퍼를 신고 서성였던 터라 나
오늘은 따듯한 붉은 흙 부뚜막의 이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추운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봄 냄새가 솔솔 풍겨올 때 저의 선친은 아카시아 나무를 하러 가셨지요.우수(雨水)가 지나 산 너머 세제골에서 땔감으로 베어온 아카시아 나무 속살에는 불규칙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 아카시아나무를 아궁이에 땔 때면 푸짐한 소리를 내었습니다.지금쯤이면 아카시아 나무는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 한줄기 물을 가지로 끌어 올리느라 한참인 때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물줄기가 촉촉하기까지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아카시아 나무는 아궁이에서 푸짐하게 소리를 냈던 것이었
보름, 그것도 정월대보름은 또 하나의 뜨거운 달을 품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매번 15일 주기로 보름달이 찾아오는 줄은 익히 알지만, 똑 같은 달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설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정월대보름의 기운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하늘과 땅. 서로의 양과 음의 맞아 생명을 허락하듯, 태초의 생명을 예견하듯 그렇게 달빛은 말을 합니다.이때부터 부는 바람은 허파를 자극해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겨울잠을 푹 잤던 붉은 간의 움직임도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정월대보름달의 기운 때문이 아닌가합니
겨울을 나기위해 뽁뽁이를 붙이고, 여기저기 바람구멍을 찾아 막으며, 겨울 채비를 꼼꼼히 했습니다.올 겨울엔 눈이 많이 오고, 무척 춥다는 예보에 경기까지 많이 안 좋다는 뉴스가 나오니 콧노래를 부를 분위기는 아닌 듯합니다.늘 제일 춥고, 제일 어렵고, 몇 십 년 만에 오는 어려움을 전례행사처럼 되풀이하는 이런 공허한 말들이 이 겨울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그래도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때는 이런 상황들을 어찌 표현했을지, 어찌 이겨냈을 지를 생각해보며 몸의 온도를 조절해보려 합니다.어려웠던 시절. 이때쯤
묵은해는 가고 서슬 퍼런, 기가 가득한 숫자 2019년이 확 들어옵니다. 가슴에 서각을 하듯 다짐과 각오를 다져보지만, 이 각오가 얼마동안이나 나를 다그칠지…. 먼 산 바라보며 숨 한번 고릅니다.“올해도 멋지게 살자, 그러기위해 뚜벅 뚜벅 걸어보자”고 외치며 오늘도 긴 호흡을 끌어올려 조심스레 토해내봅니다. 천천히, 조금씩, 하얀 입김을 길게 내쉬며.짚을 태우던 그때의 향을 느껴봅니다. 불을 붙일 줄 몰라도 짚을 잘 타도록 해주었던 아궁이는 이 추운 겨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따뜻한 경험이었습니다.추위에 떨었던 어려웠던 시절의
동지가 지나고 나면 밤의 색은 온통 칠흑과 같다. 산 아래 논두렁 저만치에 있는 오두막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창문을 통해 새어나오는 불그레한 불빛은 고혹적이다.이런 겨울밤에 눈이 내리면 세상은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나의 가슴은 온통 하얀 추억들이 그득하게 자리 잡고 있다.하얀 눈꽃이 하늘거리며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추억도 그 눈을 타고 내려온다. 참으로 그리운 추억들. 그 추억들은 불이 되어 나를 유혹한다. 나는 그 추억 속에 있고, 그 추억은 그 불빛 아래서 춤을 춘다.커다란 무쇠 솥에는 물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징글벨’ 등 캐롤 소리에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장독 위에는 하얀 눈이 쌓여 왠지 푸근한 마음이 드는 가운데 산타할아버지가 빨간 양말 한 켤레 정도는 주고가실 듯합니다.하얀 눈처럼 하늘거리며 내리는 그리움 속으로 빠져봅니다. 저녁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향교 앞 동네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열 댓 명이 족히 넘는 아이들이 모여 신나게 뛰어놀다 보면 언제나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리 “희자야, 은주야, 일환아, 희지야, 만순아…밥 먹어라”당시에는 캐롤송보다 더 많이 들었던 이 소리는 교동 향교 산 아래 울려 퍼지곤
평범한 일상에서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매일 시작되는 아침은 창문사이로 깊게 들어와 줄 것 같은 햇살의 고마움이 문득 느껴지는 순간입니다.그 아침은 매번 느낄 수 없는 찰나와도 같이 느껴지는 것이었기에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한다는 다짐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내일도, 또 모래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실은 오늘 이 아침은 신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날입니다.11월의 깊은 아침을 마주한 지금의 행복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저 그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저에게는 기적이 시
벌써 11월입니다. 11월에 내리는 가을비라서 그런지 참으로 고상하게 내립니다. 아마도 제게 재주가 허락된다면, 창호지 창문을 열어 살짝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방구석 저기 쯤 촛불하나 피워 놓고 묵향 가득한 난을 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가슴으로만, 가슴으로만 그려봅니다. 난을 칠 때는 붓이 왜 아래에서 위로 가는 걸까요?모든 것이 처음처럼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호흡을 멈춘 상태의 난의 밑그림은 11월에 내리는 이 비만큼이나 더함이 없는 검은 점 하나 뿐으로, 공허함을 메우지 못합니다.못내 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 가사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10月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왠지 사연이 많은 여자가 된 듯, 마치 저의 노래인 듯 맞지 않은 음으로 중얼거립니다.금요일에 가을비 소식이 있다기에 뜰을 정리하기 위해 대비질을 합니다. 쓰-윽 쓰윽-쓱 쓱대비질 소리도 가을입니다.봄꽃보다 예쁘다는 가을 단풍, 모닥불 자리에 옮겨진 꽤 오래된 고목 감나무 잎은 수북수북하게 안주인의 사연만큼 쌓였습니다. 이런 운치는 게으른 안주인의 호화스러운 운치지요.단풍은 올해도 어김없이 참으로 각
명절이 끝나고 나니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다. 명절도 지나고, 무싯날(장날이 아닌 날)이어서인지 분주했던 방앗간도 절의 공양간처럼 조용한 가운데 할머니 한 분만 들깨 기름을 짜러 와서 앉아계신다. 그러한 가운데 방앗간의 기계소리는 “철~컥~ 철~컥” 하며 나를 어머니에게로 데리고 간다.나의 어머니는 찌든 소주 대병을 지푸라기와 모래를 넣고 열심히 흔들어 병을 씻어내 기름병으로 만드셨다. 소주 대병에 짜온 들기름은 나에게는 어머니의 ‘향기’이자, ‘추억’이 되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가슴속에 그리운
9月5日(음력 7월 27일). 바람이 살랑살랑 말을 합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서울 가신 오빠가 빨간 구두를 사올 추석이 보름 남짓 남았다고.앞마당의 붉은 고추가 뜨거운 햇살아래서 온몸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묵은쌀의 벌레를 내보내려 쭉 펴 놓은 커다란 포대종이 위에 하얀 쌀은 그대로가 축복이고, 돌아올 가족들을 환영하려는 아저씨들의 예초기소리가 노랫가락보다 흥이 납니다. 그 소리를 감싸고 내게 실바람을 타고 와준 칡꽃 향은 그냥 그 자체가 천국입니다.해마다 보아온 풍경이고, 향이련만, 워낙 길고 어려웠던 폭염의 시간들이 기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