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에서 오리들이 봄의 깃털을 고르고 있다 막 동면을 빠져나온 목련이엉킨 생각을 풀고 희디흰 날개를 펼치는 사이, 북쪽 하늘이 무거워졌다 길을 잘못 든 샛노란 개나리들이 냉기에 떨고출구를 잃은 바람은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봄볕은 시간마다 화선지를 갈아 끼우고지난겨울 급하게 이어놓느라 생긴 다리의 난간을 초록으로 붓질한다 늙은 고양이 꼬리까지 색을 얹고쉴 틈 없이 지친 몸 물감을 찍어 냇물에 그린 물 그림 일렁이는 봄바람에 자꾸 떠내려가자오리가 냇물에 발바닥 낙관을 찍어 봄 한 점 완성된다,
소신공양이라더니제 몸 허옇게 태워 사람들 밥 짓다가 스러졌구나 부처님 마음으로미아6동 산동네 온통 끌어안고 있구나 한 토막 숯의 마음조차죄 벗어 던진 채.
떠난다는 것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외치며아침 6시 13분, 어둠을 뚫고 기차가 들어온다.뿌우웅 경적을 울리며 치익칙 역으로 돌아온다.이번 역은 조치원, 조치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왼쪽 출구에 줄을 서자 애인이 귓속말을 한다.역 주변의 출산율이 왜 높은지 아느냐고 농을 던진다.6시 13분 경적소리에 잠에서 깬 사람들이그 시간에 다시 잠들 수 있을까?우리도 역 주변에 방 하나 얻어 볼까?아침 햇빛 속으로 주먹만 한 연분홍 복숭아들주렁주렁 제 모습을 드러내며 웃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던 애인이만져지
매년 12월 31일 많은 사람이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아 환호성을 지른다.‘제야(除夜)’는‘제석’이라고도 하는데‘어둠을 제거한다.’또는‘밤을 새운다.’라는 의미이며, 1년 가운데 마지막 날인 음력 섣달그믐을 말한다.그러나 우리가 양력을 사용하므로 매년 12월 31일을‘제야’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는 음력 새해를 맞는 설 전날이 제야다.조선을 건국하고 한양도성을 중심으로 사대문과 사소문이 만들어졌다. 정도전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즉 음양오행 사상에 기초하여 사대문 명칭을 부여했다.동대문은
새해가 되면 재미 삼아 토정비결을 보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어머님께서 어렵게 책을 구해서 식구마다 생년월일시를 찾아가며 둘러앉아 함께 보았다.‘운이 좋은 해니 너는 걱정 없다’라든가 ‘올해는 안 좋다니 매사에 조심하며 지내야 한다’라는 말씀을 토정비결을 본 어머니가 해주시고는 했다.그까짓 게 맞긴 뭐가 맞는다고 그러실까, 시큰둥했지만 그래도 ‘운세가 길하다’는 말을 들으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게다.결혼 전, 지금의 남편과 오래 사귀고 있었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홀어머니에 가난한 집 아들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부부가 긴 세월 살다 보면 다투지 않고 살기는 힘들지 않을까. 어느 부분이든 잘 맞지 않는 곳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만 읽어봐도 남편을 ‘나와 전쟁을 제일 많이 한 남자’라고 하지 않았는가.우리 부부도 그렇다. 침대의 온도부터 다르다. 나는 따뜻한 걸 좋아하지만 더우면 못 자는 남편은 겨울에도 시원해야 한다. 나는 단 커피를 싫어하는데 남편은 달달한 커피를 좋아한다.어디 그뿐인가.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남편은 여행이나 쇼핑도 좋아하고, 나는 꼭 필요할 때 외에는 사람 많은 곳은 피곤해서 돌아다니길 즐기지
서너 달이나 되는 듯, 길고 힘든 한 달이 지나갔다. 올해로 100세가 되신 친정아버지께서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지시는 바람에 고관절 대퇴골이 골절되어 우리 형제자매들은 정신없이 바쁜 한 달을 보내야 했다.새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신 아버님은 자식들을 불편케 안 하시려고 실버타운에 들어가 지내셨다.주말이면 특별한 볼일이 없는 자식들은 모두 모여 아버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기도 하고 춥거나 덥지 않은 계절에는 우리 농장에 모여 아버님과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도 했다.그러나 코로나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몇 달 못 모시고 지내던 차
관동 땅 이름 모를 대숲 아래욋 옷 벗어 자리 깔고굳어버린 송편 서너 알에막걸리 한잔 따라 올리며두 무릅 꿇고 앉으니눈물이 이리도 뜨거운 줄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백년 전꼭, 백년 전새끼만은 살려 달라하는 아비의 입안에죽창 쑤셔 혓바닥 도려내고짐승처럼 울어대는 어미의 두 눈알 파내다 못해새끼들 다리 난간에 산 채로 목 매달아살가죽 벗겨 살점 찢어 내고발버둥 치는 손발은 짤라길바닥에 패댕이쳐 버린하늘과 땅 같이 통곡하였을 그 날을이제서야 알았습니다관동의 싯 푸른 앞바다는조선 백성들이 토해놓은 붉은 피가검은 바위로 굳어버려배 하나 뜰 수
세상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는 복을 많이 받는 것이고, 둘째는 무병장수하는 것이다.이 두 가지를 마다할 사람은 동서양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세가 많을수록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옛날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네 할머니들은 정안수(정화수의 비표준어)를 떠 놓고 삼신할미께 이렇게 빌었다.어지신 삼신 할매 금지옥엽 우리 애기외 굵듯 달 굵듯 모래밭에 수박 굵듯먹고 자고 먹고 자고 무럭무럭 키우주소복(福)을랑 석숭(石崇)에 타고 명(命)일랑 동방삭(東方朔)에타서 균(귀염) 자동
투명한 유리창에 새들이 날아와 부딪쳤다 새가 떨어지고유리창엔 눈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 바깥의 풍경은 그대로인데안에서 바라본 바깥은유리창을 닦아도 슬픔이 묻어 있었다생이 물드는 순간처럼 누구세요누구세요 영철이를 불러주세요영철이가 오늘 안 보여요 엄마가 섬 그늘에……. 오카리나 연주하는 동안툇마루에 있어야 할 아들을 찾고 있었다 집을 빠져나간 생각은 어디 가서 밥을 먹나
‘모지랑이’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 끝이 다 닳은 물건을 말한다. 지금은 물자가 흔해서 조금 쓰다가 버리는 것이 태반이지만, 부모님들은 늘 물건을 아껴 쓰고, 고쳐쓰기를 반복했다.닳아서 쓰기 어려울 때는 다른 것에 덧대어 사용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짧아진 연필을 몽당연필이라고 했다.하루는 같은 반 친구가 몽당연필을 볼펜 껍질에 끼워 쓰는 것을 본 선생님이 “물건을 아껴 쓰는구나.”라고 칭찬하자, 이튿날 몇몇 친구들 필통에는 몽당연필이 들어 있었다.집에서는 닳아빠진 빗자루를 몽당빗자루라고 했는데 이 몽당빗자루는 장대에
물겹은 둥글다번지고 번지는 동그라미들헤아리기 전에 겹치고겹치다가 흩어진다부드럽게 돌을 쓰다듬어 휘돌고물고기의 비늘도 깨진 병 조각도 핥아준다 백사장에 밀려온 물겹갈매기 발목을 맴돌다가모래밭에 둥글게 장문을 짓기도 한다 언젠가소沼에 살던 물겹그 소용돌이에 휩쓸린 적이 있다 물겹의 완강한 고집을 꺾고빠져나오기까지죽을힘으로 허우적거려야 한다 물겹은 부드럽고 단단한물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 고리를 푼다는 건한 생을 얻는 것이다
꽃들이나 바라보며 산들 어떠랴나무들이나 키우며 산들 뭐라 하랴세상의 일들은 늘 상처투성이고샅고샅 꼬챙이가 들어 있다꼬챙이는 본래 찌르기 위해 태어난 물건꼬챙이는 무엇인가를 찌를 수밖에 없다바지 주머니 속에 깊이 감춰 두어도어느새 밖으로 삐져나오는 꼬챙이세상일들의 고샅고샅에는꼬챙이에 찔려 피 흘리는 사람 많다사람들은 다 꼬챙이에 찔리기 마련사람들은 다 꼬챙이로 찌르기 마련저도 모르게 꼬챙이에 찔리고,저도 모르게 꼬챙이로 찌르다니!상처투성이의 나날에 지친 사람들피 흘리며 여기저기 웅크린 채 모여 있다꼬챙이에 찔려도 살아야 한다버텨야 한
커피숍테이블에 앉아있는 그녀들 대화 없는 대화는 모두 스마트 폰의 분주한 무음이다 진화에 앞장선 호모 모빌리쿠스의 손목에 잡혀반짝이는 금화는 캐지 못하고오직 곡괭이만 사들이는 그녀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SNS로 가계를 설계하고푸른 지폐의 따끈한 밥을 연신 퍼 올린다 나는 시시詩詩한 남의 곡간을 기웃거리다입맛만 다시고 만다 한 테이블에 있어도눈길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서로가 제 안에 눈부처로 들어앉아 손으로만 말한다 날이 어두워지도록아직 시시한 이야기조차 한마디 채굴되지 않는다
고향이라지만밤길에 어쩌다 오시는 분저 멀리서도 보이게외등 불 환히 밝혀둡니다 일찍이 시어른들 여의고주변 손가락질이 무서워친정은 멀리하고 시댁이 먼저였습니다 쭈글이 손에 관절이 부어올랐어도입덧하는 며느리만 할까 차마 입 못 떼고제상 앞에서 쓸쓸히 잔 올립니다 배웅 나간 서쪽 하늘에없던 달이 생겨환한 웃음 지으며 멀어져 갑니다.
1624년(인조 2년) 1월 이괄은 인조반정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다. 이괄의 난은 한성과 경기도가 아닌 지역에서 일어나 반란군이 궁궐을 점거한 반란이다.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인조임금은 남쪽으로 몽진(蒙塵)을 하게 된다.공주까지 피난 온 임금은 공주 산성에 올라 쌍수정 옆 느티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반란이 빨리 진압되기를 바라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급하게 피난을 온 처지라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아 배고픔을 달래며 있던 차에, 공주 북쪽 목천에 사는 임씨들이 떡을 해서 임금께 받쳤다.배가 고픈 임금은 떡을 먹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중학교 때 배운 가곡이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가을이 깊어지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어느 시인과 여인의 이별을 노래한 가곡이다. 지금도 많은 가곡을 기억하는 것은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이다.기러기는 찬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철새다. 오릿과이므로 오리와 비슷하지만, 목이 길고 다리가 짧으며 강이나 바다 늪에서 서식한다.요즘은
하늘은 높푸르고 곡식은 익어 풍요로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은 어느덧 지나가고 겨울의 길목에 들어섰다. 한 해가 저물어 가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을 갖지만, 소방서에는 긴장감이 고조된다.다가오는 겨울철은 계절 특성상 난방용품과 온열기 등 화기 사용량이 급증하고 실내 활동 시간이 늘어나며, 크리스마스 등 연말연시 여러 축제와 모임으로 화재의 위험이 만연해진다.국가화재정보시스템 공주시의 화재 발생 5년(`18~`22년) 통계를 보면, 매년 평균 47건(28.6%)의 화재가 겨울철에 발생하여 그로 인한 사상자 수는 여름과 비
새벽안개 속에 얼굴을 묻고해 뜰 때까지 기다렸어하루의 시간을 뽑아놓고딱히 갈 곳도 없는데누가 부르지도 않는데, 안개가 걷히는 그 짧은 사이초록의 하얀 물꽃방울코끝이 찡하도록 팽팽한 싱그러움사정없이 나를 당기는 거야끌려가고 있어, 지금
오늘도 어머니는같이 있어도 외롭다고외로워서 못 살겠다고 덜 늙은 나는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거라고그러니까 감당하고 살라고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위로해 주기는커녕 짜증부리는나도 시들어가나 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끼어서하루 종일 분주함은 가라앉을 새도 없이내가 나를 안 보고 산 지도 여러 해 그러다가 쓰러지면 중심이 무너질까억지로라도 몸과 마음을 챙겨 보지만늙어버린 마음은 젖은 잎처럼 떨어지지 않고 느닷없이 날아오는 친구들 부고장은사는 것과 죽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머리 무겁게 침울해 하다가 요즘 들어 더 커지는 외로움이굴러가는 눈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