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58년 5월 깊은 산속 하늘만 빤히 보이는 강원도 산골에서 보리타작해 놓은 위에서 아침에 태어났다.보리 위에서 태어나서인지 식복은 많았나 보다. 살면서 그리 배를 곯지는 않았다. 어려서 유난히 할머니를 좋아했던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우리 가족은 춘천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고, 첫 직장을 시작한 곳도 서울이었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 따라 휴가 때 놀러 온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나의 평생 보금자리가 되어 살고 있다.친구와 함께 처음 화월리에 오던 생각이 스쳐 간다. 어찌나 길이 험하던지 버스 뒷자리에 앉아
2020년 4월 14일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의 농촌 생활이 시작된 날이다.나의 옆 지기가 건축 정보통신 감리사로 일을 시작해 2년이라는 계약 기간 동안 공주시 사곡면 화월리에 자리를 틀게 되었다.거주할 집을 구하기도 막막했는데, 세종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가 도와줘 예쁜 전원주택을 임대할 수 있었다.비록 2년이라는 짧은 귀농이지만. 내게는 전원생활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고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농촌 생활을 시작했다.우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사기로 하고, 냉장고는 집주인 내외가 쓰다 창고 옆에 방치해 놓은
초등학교 4학년 때가 문득 생각난다. 아버지께서 “마늘을 캐야 하는데 일손이 없다”며 “오늘 하루 학교를 가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반박도 못하고 “네” 하고 대답하고선 말없이 호미 들고 따라 마늘밭으로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그날따라 학교 가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호미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누가 볼까 싶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밉고, 원망스러웠다.어린 나는 왜 하필이면 아버지께서 나에게만 일하기를 요구하시는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분노의 호미질을 했다.아마도 아버지께선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서
몸이 불편하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 제약을 받는다. 이제 고관절 수술한 지 40일.그래도 목발 떼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불안하지만 급하면 벽이라도 짚을 수 있고, 식탁이라도 잡을 수 있는 주방과 거실 사이는 다리의 힘도 기를 겸 아장아장 걷는다.아침에는 모처럼 된장찌개도 끓여 먹었고 약병들로 어질러진 식탁 위도 정리를 해본다.이리 아프니 가까운 지인들 신세를 본의 아니게 많이 지게 되었다. 정겨운 지인들은 김치나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왔다.나는 못 해본 일인데 미안하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
얼마 만에 돌아온 내 집인가? 목발에 몸을 기대며 한 달 만에 들어선 내 집.아! 따듯한 이 내음. 비록 창밖 햇살을 바라보며 등을 보이고 있는 꽃들이었지만 내 화분의 여러 꽃들이 날 반기며 피어있었다.활짝 피어있는 여러 색깔의 제라늄들. 나 없이도 잘 피고 있었구나. 둘러보며 내 집이 이렇게 내게 안식을 주는 집이었던가 하고 새삼 감사와 고마움을 느꼈다.몇 년 전부터 가끔 씩 고관절에 통증을 느꼈다. 아픈 곳에 파스를 붙이거나 온탕에 몸을 담그며 몸을 달래면 또 그럭저럭 통증을 해소시키며 지낼 수 있었다.아프지 않을 때에도 “왜
풀이 풀답고 꽃이 꽃다운 날까닭 없이 눈물이 난다 퇴화된 장미 가지에 새순을 보채다가가시에 찔린 붉은 피고름살점을 도려내고서야 새살이 돋았다 너무 아파서울다 울다가 쓰러지고 보니나도 모르는 사이 시인이 되었다
말이 없었다 백합꽃도라지꽃핀 자리에해종일 눈길만 주다가 달아오른 몸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마른 눈에 촉촉이 눈물 고이자품바의 허리춤에서 손을 놓지 못한 채 돌아앉아 운다. 그녀가
삐 그 덕마디마디 소리가 나거든 두려워 말고 뒷걸음질하지 말고 조각내지 말고 끊임없이 다독여 일어서 봐!언제 뿌려 놓은 것인지 모를 씨앗에 새싹이 돋아 꽃이 피고 열매가 맺듯굳게 조여 있던 마음 안쪽이 바깥쪽으로 기울 때 발끝에 힘주어 박차고 나가 봐!세상이 한눈에 보이거든 지난 시간은 놓아주고 불확실한 시간을 안고 뛰어 보는 거야 너무 힘이 들어 넘어지거든 그 자리에서 쉬어 봐!납작 엎드려 한숨 돌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빗질을 하는 거야 거울을 보고 간결해진 머릿결에 쓰담 쓰담 하는 거야, 참 잘했어!
한낮햇살이 두고 간 달맞이꽃이보름달 머문 자리에 누웠습니다 작아서너무 작아서두 손으로 감싸 안아봅니다 어둠은무섭습니다 다만,그대가 있어 눈을 뜨고 있을 뿐입니다
성큼 허락하지도 못하면서왜 가슴이 뛸까 그냥 맞이하면 될 것을무엇을 준비하려는 걸까 언제쯤이라야네 말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얼마나 가식의 옷 닳아야양팔 벌려 환영할 수 있을까천년의 바람이엉킨 가면을 벗겨주고억겁의 바위가 닳도록 얼마만큼 인연의 끈이 더께져야쉬이 맞이할 수 있을까 내일 가도 돼?
한순간 떨어지는 별 똥 별너의 손을 놓고울부짖던 지난 시간들마음 길 잃고 헤매던 날들흘러간 사랑 단 몇 분 동안 혼신을 다해노래 부르고 무대에서내려온 무명 가수처럼짧게 지나가는허전한 오후
모퉁이 채마밭 한가운데빚 받으러 온 사람 마냥다리 쭉 펴고 자리 잡고 앉은쇠비름처럼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인데도너무도 당당하고 뻔뻔함에한여름 뙤약볕도눈을 감았다
꽃잎 떨어지는초사흗날눈물 흘리던 날들당신의 숨결 찾다가밤하늘 언저리에서 만난 그리움의 결정체
봄볕이 이토록 온정스러워 미치겠다고요? 목련, 청매화, 벚꽃, 명자꽃이 차례로 피고 있다고요폐부 깊숙이 이것들의 생기를 맘껏 들여마시고 싶다고요사랑에 달뜬 청춘님들 전신을 감전하는 첫 키스는 생각도 말아요어쩌나요 그것은 사탄의 유혹 먼발치서 눈으로만 아니 그마저도 실눈으로만 무조건 가까이 오지 말아요 독사보다도 치명적인 독을 옮길 수 있어요무엇보다 탐욕스런 입과 코는 고기능성 마스크로 숨 쉴 틈 없이 막아요어쩌면 이것은 신의 치밀한 벌일지도 몰라요 아마존을 불태우고 시원의 바다에 만년빙산보다 더 높은 쓰레기산을 만들고 바닷가 왜나라
언제부턴지 귓속 찌르레기 소리가 커졌다고어둑한 강둑에서 체머리 흔드는 갈대 무리나뚝뚝 부러지는 겨울 나목 한 그루가거기 오목가슴께에 무지근히 가로누워 있다고 인생은 끝내 맞추지 못한 큐브게임 같아돌리고 비틀어도 반듯해지지 않는 생의 귀퉁이들한때 다채롭던 꿈들을 서너 줄 이력서에 옮겨 적으며창가의 봄볕에 기대 혼곤히 낮잠에 들기도 하는 해질녘쯤 현관문 앞에 먼지 묻은 신발을 벗을 때나‘영원한 사랑’ 운운하는 휴먼 드라마를 보다가왈칵 치미는 정체 모를 서러움에 주르륵 눈물 떨구고 마는갱년기 홀로그램 속을 둥둥둥 걷고 있는 그 여자
초록 달빛이 오월 강가에 내린 날아득한 사람 하나이팝꽃처럼 피어난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내 몸 어딘가에 웅크려 살던 저 말이불현듯 깨어나까마득 그리움을 소환한다 어스름 저녁 금강에 달이 뜨고빗장 지른 다짐들이젖은 물풀처럼 헤적일 적 유월로 가는 급행열차에 오르면하냥 너를 만날 것만 같다
쿨럭쿨럭 잦은 기침이 몸을 흔든다며칠 밤을 밝혀도 끄떡없던 단단함은 어디 가고돌고 도는 선풍기 아래늘어진 잠을 일으키는 느슨한 동작 이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담판이라도 짓겠다고가진 건 없어도보여줄 건 울음밖에 없다고방충망을 움켜쥔 매미는 화끈한 생을 보여준다 가끔은 졸다가 잠꼬대를 흘리며 투정을 부려도기쁨의 온도가 미달이라도, 평생 같은 말만 해도 밤새도록 옆에만 있어도 좋다
기필코 잡으리라작심을 하고 밤새 노려보다가새벽녘 눈만 벌개져서 휘청거린다 누구는 시詩라는 놈이 날 잡아잡쓔 잘도 찾아온다는데도통 잡을 수가 없다 내 딴에는 잘 먹는다는 미끼를 수없이 갈아 끼워 보지만먹이만 낚아채고빼꼼히 꼬리만 보이곤 쏜살같이 도망친다운수 좋은 날은 등지느러미가 보이기도 하지만코쭝배기 벌름거리다 재빨리 숨어버린다 그저 마음만 뜨겁게 달아무모하게 첨벙거리다 공책만 후지른다까만 밤을 살라 먹기도 한다 잘 짜여진 은유의 그물날카로운 직관의 작살 어디서 파나요
할아버지 나뭇짐 속에 꽂혀있던진분홍 봄 한 다발 봄은 늘 지게에 업혀 내게로 왔다 좀 서둘러 왔는지부뚜막 옆에서 까무룩 졸고 있는어린 봄 고양이가 발로 툭 건드리자화들짝 꽃잎이 열리고 있다
햇볕에 마르지 않는 습성의 배후가 바글거린다 글씨들을 펼쳐보면 축축한 것들이 많다 물먹는 하마를 곳곳에 풀어놔도 소용이 없다물소 등에 둥둥 떠 있다가 잠깐씩 바닥에 발을 붙이곤 커피를 들고얌전히 물렁한 등에 다시 오른다 아무래도 이런 날은 아작아작 팝콘을 씹으며 멜로 영화 보는 날 지켜지지 않는 약속의 빈 엽서를 받고동백나무 아래처음 꽃송이가 질 때까지 서성이던 여자 가진 것 중에 가장 환한 것을 잃어버리고어두운 문장으로 가득해지던 손수건 도착지가 다른 직행버스에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모를 뜻밖의 사람이 바라보던 유리창어디를 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