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키와 체를 사용하는 집이 없지만, 예전에는 집마다 키와 체가 없는 집이 없었다.키(簸)는 곡식 등을 까불러서 알곡과 쭉정이, 티끌, 검불 등을 걸러내는 도구를 말한다.키는 버드나무나 대나무로 만드는데 대나무가 흔한 남부지방에서는 대로 엮은 것을 많이 썼고, 중부지방에서는 고리버들을 엮어 만든 것을 많이 썼다.대나 버들을 납작하게 쪼개, 앞부분은 넓고 편평하게 엮으며 뒤로 갈 수로 좁아지고 끝은 살짝 움푹 들어가게 짠다. 키의 앞쪽 양쪽에 넓적한 날개를 달아 바람이 잘 일어나게 한다.곡식을 타작하고 알곡과 쭉정이를 걸러내기 위
서양에서는 옛날부터 예술작품이나 건물, 생활용품을 배치할 때 황금비율을 매우 중요시했다.황금비율은‘황금분할’이라고도 하는데, 8등신의‘밀로의 비너스상’이 황금비율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황금비율은 르네상스 시대의 수학자‘루카 파치올리’라는 사람에 의해‘신의 비율’이라고 명명되었다.황금비율은 선을 긴 부분과 짧은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긴 부분과 짧은 부분의 비가 긴 부분과 전체의 비와 같게 되도록 분할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신의 비율은 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큰 영향을 준다.서양사람들이 말하는 황금비율은 1 :(1:1.61
엊그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내내 가졌다.점심은 보리굴비를 시켰는데, 품격있는 접시에 가로로 놓여있는 모습이 참 먹음직스러웠다. 맛을 보니 짭쪼름하면서 아주 담백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밥 두 그릇은 너끈히 비웠을 것이다. 굴비는 조기로 만든다. 조기의 아가미를 열고 조름(물고기 아가미 안에 있는 빗살 모양의 숨 쉬는 기관)을 떼어낸 후 깨끗이 씻고 건조 시킨 후 소금을 아가미에 가득 채우고, 몸 전체에 소금을 뿌린 후 항아리에 담아 이삼일쯤 절인다.절인 조기를 꺼내서 삼베 보자기에
“찐티엔 워 쭈오 똥 바(今天我做东吧. 오늘은 내가 쏠게)”. 중국 식당에 가면 자주 듣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오늘 제가 동쪽을 할게요" 라는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동쪽의 역할이 ‘주인’의 의미로 쓰입니다.전통적인 남향집을 봤을 때 동쪽과 서쪽에 사랑채가 있었는데 그 중 동쪽에는 주인이 머물고, 서쪽엔 손님이 머물게 되었답니다.그래서 내가 동쪽 역할을 하겠다는 말이 주인 역할, 돈을 내겠다는 의미로 옮아 왔답니다. 우리나라 옛 서원에도 동재, 서재가 있었는데 동쪽에 선배들이 머물렀다고 합니다.중국 전통문화에서 “
뽕짝으로 불리던 트로트 열풍이 대단하다. 말 그대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5년 전 미스 트로트 대회에서는 송가인이 큰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이루어진 미스터 트로트대회에서는 임영웅이 뭇사람들의 감정을 사로잡았다.70~80년대 이후 포크송, 발라드풍에 밀리던 트로트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TV 프로그램마다 트로트 경연대회가 한창이다. 요즘은 ‘현역 가왕’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일인자를 뽑았는데 고등학생인 전유진이 1위를 했다고 한다.한국에서 이렇게 트로트 열풍이 일자 일본에서도 엔카의 열풍이 다시 이는 것 같다. 조만간 한일(
아들이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겠다고 인감도장을 파고 서류를 떼고 부산을 떤다.요즘은 다 서명으로 하는데 왜 도장을 파니 하고 물으니 아파트 매매 서류에는 인감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한다.3만 원을 주고 좋은 재질로 품격있는 인감을 새겼다고 자랑한다.요즘은 서명으로 하고, 도장을 잘 쓰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개인 필수품 1호였다.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이 도장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도장포(圖章鋪)가 많았고, 중후한 인감도장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서양은 동양처럼 도장을 찍는 것보다
요즘, 국민의 뜻에 반하는 정치권이 한심하다.국민의 힘이나 민주당 모두 하는 짓거리가 가관이다. 공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습이야말로 유구무언이다.분노와 증오를 넘어 완전 정치 혐오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전직 대통령이 여론을 듣지 않고 최측근을 옹호하다 단초가 되어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있었다.또한, 지금은 당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걸려있는 상태에서 공정한 공천을 하다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과연 그 결과에 누가 승복할 것이며,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민심이반과 공천 결과에 불복하는 도미노 현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걱정이다
요즘 모 TV에서 ‘고려 거란 전쟁’드라마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11세기 거란족은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이었다.그런 거란이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쳐들어 왔고 이로 인한 고려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2차 침입 때 현종은 남쪽으로 몽진을 한다. 몽진(蒙塵)은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쓴다.’라는 뜻으로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또 다른 말로 파천(播遷)이라고도 한다.현종은 1010년 음력 12월 28일 나주로 피난지를 정하고 원정왕후 김씨, 원화왕후 최씨와 함께 피난길에
세상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는 복을 많이 받는 것이고, 둘째는 무병장수하는 것이다.이 두 가지를 마다할 사람은 동서양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세가 많을수록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옛날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네 할머니들은 정안수(정화수의 비표준어)를 떠 놓고 삼신할미께 이렇게 빌었다.어지신 삼신 할매 금지옥엽 우리 애기외 굵듯 달 굵듯 모래밭에 수박 굵듯먹고 자고 먹고 자고 무럭무럭 키우주소복(福)을랑 석숭(石崇)에 타고 명(命)일랑 동방삭(東方朔)에타서 균(귀염) 자동
‘모지랑이’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 끝이 다 닳은 물건을 말한다. 지금은 물자가 흔해서 조금 쓰다가 버리는 것이 태반이지만, 부모님들은 늘 물건을 아껴 쓰고, 고쳐쓰기를 반복했다.닳아서 쓰기 어려울 때는 다른 것에 덧대어 사용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짧아진 연필을 몽당연필이라고 했다.하루는 같은 반 친구가 몽당연필을 볼펜 껍질에 끼워 쓰는 것을 본 선생님이 “물건을 아껴 쓰는구나.”라고 칭찬하자, 이튿날 몇몇 친구들 필통에는 몽당연필이 들어 있었다.집에서는 닳아빠진 빗자루를 몽당빗자루라고 했는데 이 몽당빗자루는 장대에
1624년(인조 2년) 1월 이괄은 인조반정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다. 이괄의 난은 한성과 경기도가 아닌 지역에서 일어나 반란군이 궁궐을 점거한 반란이다.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인조임금은 남쪽으로 몽진(蒙塵)을 하게 된다.공주까지 피난 온 임금은 공주 산성에 올라 쌍수정 옆 느티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반란이 빨리 진압되기를 바라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급하게 피난을 온 처지라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아 배고픔을 달래며 있던 차에, 공주 북쪽 목천에 사는 임씨들이 떡을 해서 임금께 받쳤다.배가 고픈 임금은 떡을 먹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중학교 때 배운 가곡이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가을이 깊어지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어느 시인과 여인의 이별을 노래한 가곡이다. 지금도 많은 가곡을 기억하는 것은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이다.기러기는 찬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철새다. 오릿과이므로 오리와 비슷하지만, 목이 길고 다리가 짧으며 강이나 바다 늪에서 서식한다.요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