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雪夜)김 광 균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 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희미한 눈발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어려서, 고등학교 학생일 때였을 것이다. 시가 무언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를 읽던 시절에 만난 시 가운데 한 편이다. 시인에 대한 그 어떤 사전지식조차 없었을 것이다. 다만 시 한 편이 가슴에 와 화살
꽃김춘수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오늘날 인터넷 ‘다음’과 ‘네이버’를 클릭해 볼 때, 가장 많은 수치로 선호도가 기록되는 시는 김춘수의 「꽃」이란 작품이다. 일견 놀라운 느낌이 아닐 수 없다.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윤동주의 「서시」, 한용운의 「님의 침묵」, 정지용의 「향수」, 고은의 「그 꽃」 같은 시들이 뒤를
뼈저린 꿈에서만전봉건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홰나무 아래로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조용히 웃으시던 그 얼굴의 빛무늬 하나하나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아무리 애써
한 시절 우리 문단에는 ‘북에는 소월이요, 남에는 목월이요, 중도에는 용래’라는 말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이는 일찍이 지에 박목월을 시인으로 추천하면서 추천위원인 정지용이 그 추천사에서 ‘북에는 소월이요, 남에는 목월’이라고 썼던 말을 패러디하고, 확장시켜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어로 쓴 서정시 가운데 그 극치점에까지 간 시인들을 찬양하는 문장이었던 것입니다.박용래(朴龍來, 1935~1989) 시인. 충남 강경에서 태어나 당시로서는 명문이었던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다가 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김소운, 박목월을 찾아다니며 사사한 끝에 지에 투고,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시인이 되어 아름다운 이 땅의 서정시를 아주 많이 남긴 시인입니다.누구는 말하기도 합니
지난겨울은 추웠습니다. 추워도 아주 많이 추웠습니다. 우리 집만 추웠던 게 아니라 한반도 사람들 모두가 추웠을 것입니다. 오돌오돌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아니 견뎠을 것입니다. 혹독하다는 말의 느낌이 가장 잘 드러난 겨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갈수록 겨울이 추워진다니 걱정은 걱정입니다.추운 겨울이 오면 특히 없이 사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걱정입니다. 그 삶이 무한히 불편해지고 제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사람, 나이 든 사람들의 겨울이 힘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면역력이 약한 그들에게 감기차례라도 온다면 곤히 쉽게 넘어가주지 않기 때문입니다.나부터 지난 가을 독감 예방주사, 폐렴 예방주사까지 서둘러 골고루 맞았지만 기어코 감기란 불청객이 찾아오는 바람에 눈의 흰자위의 혈관이
해마다 계절이 바뀌고 요모조모로 자연의 모습이 바뀌면 신비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럴 듯하게 한 번 다시금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그 어떤 당황감과 허망감 같은 것이다. 자연이란, 변화란, 또 세월이란 얼마나 우리를 가혹하게 닦달하고 막다른 절벽으로 내모는가 말이다. 그 채찍질 아래 우리는 점점 우리 자신도 모를 우리들이 되어가고 있고 노년의 세상으로 이끌려 간다.저 아우성 소리 높은 젊은이들의 번득이는 눈빛을 인식한다. 우리를 꼰대라고, 쓰잘떼기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들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우리들이 일찍이 가슴 저리도록 사랑했던 자식들의 세대들을 본다.우리는 아직도 저희들을 걱정하고 근심하고, 그리하여 밤잠을 설치는데 아직도 우리더러 무언가 더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해마다 이 땅에도 가을이 찾아온다는 것이 마치 기적만 같다. 모진 더위와 기나긴 우기를 이기고 선뜻 우리 앞에 다가선 가을은 그야말로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고 수호천사처럼 정겹다. 그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런 것 같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봄과 가을에 비하여 자꾸만 길어지는 여름과 겨울. 그나마 봄이 허락되고 가을이 준비된다는 것은 축복 가운데 축복이다.어느 날 찬바람 불고 밤 기온이 뚝 떨어지면 나무들은 새로운 빛깔의 옷을 갈아입고 가을맞이에 나선다. 그러나 그 기간은 너무나 짧고도 아쉽게 지나간다.인생의 보람이 중년기에 있는 것처럼 자연의 핵심도 가을에 있다. 어찌하여 계절은 1년을 견디는가? 그것은 오로지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가을이 되면 자연도 숙연해지고 인간도 숙연해
해마다 갖는 느낌이지만 겨울과 여름을 이기고 이 땅을 찾아오는 봄과 가을이 기적 같습니다.춥고 모진 겨울을 뚫고 오는 봄. 무덥고 지겨운 여름을 통과해 오는 가을. 봄과 가을이 오던 아, 올해도 이렇게 겨울과 여름을 잘 넘겼구나, 그런 감회에 젖습니다. 그래서 어디라 없이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합니다.지구온난화의 결과라 그러는지 점점 겨울과 여름이 모질고 힘들게 지나갑니다. 올해 여름은 기나긴 가뭄에다 찜통더위에다가 늦장마와 태풍으로 어떻게 여름의 강물을 건넜는지 모를 정도로 더욱 힘겹게 보냈습니다.그래도 계절의 변화만은 어쩔 수 없는 듯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적정 수준 내려가니 우선 숨 쉬는 일부터 조금은 편안해서 좋습니다.이렇게 가을 기운이 나기 시작할 때마다 슬그머니
박두진 시인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대로 청록파 삼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말할 것도 없이 ‘청록파’란 1946년 민족해방 공간에 혜성같이 출간된 삼인시집인 『청록집』에 수록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시인을 일컫는 말입니다.세 분 시인은 비슷한 시기에 시인이 되어 오랜 시간을 한국시단의 어른으로 살다가 간 분들입니다. 문단의 지표가 되었으며 젊은 시인의 스승이 되었던 분들입니다.한 집안이나 사회나 단체에 거기에 걸맞은 어른이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많이 허전하고 섭섭한 세상을 사는 형편입니다.젊은 시절 세분 시인이 모여 공동시집을 내기로 하고 그 제목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설왕설래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정된 것이 ‘청록집’인데 이 ‘청록집’이
윤동주 시인은 참으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시인입니다. 영원한 청춘의 표상 같은 시인이요 순절의 시인입니다.우리나라 국민치고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 시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인은 김소월 시인과 더불어 최대의 국민시인입니다.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지 백성으로 36년 치욕을 겪었으면서 윤동주 같은 시인 한 사람마저 갖지 못했다면 우리의 민족사는 얼마나 쓸쓸했을까요?민족 해방을 몇 해 앞둔 1943년 7월, 일본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 학생으로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준비를 하다가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일본 특고경찰에 체포되어 치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후쿠호카형무소에서 해방 직전 해인 1944년 2월 6일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삼(3)이란 숫자를 좋아하나 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런 것 같고 하나의 본성처럼 보입니다.일찍이 공자는 ‘三人行이면 必有我師’란 말씀을 남겼는데 여기서도 ‘삼인’이 등장합니다. 예전에 간혹 잡지나 신문 같은 데에서 ‘신춘정담(新春鼎談)’이란 것을 할 때도 꼭 세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우리나라 신문학사의 전통으로 삼인시집은 1929년 이광수(李光洙)·주요한(朱耀翰)·김동환(金東煥)이 지은 합동시집 『三人詩歌集』으로부터 출발합니다.그 다음을 이은 것이 이른바 청록파로 이야기 되는 1946년도의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에 의해 간행된 『청록집(靑鹿集)』입니다.이 시집은 민족광복 이듬해 혼란기에 나와 우리 민족의 정신과 영혼의 고결함
오일도(吳一島, 1901~1946) 시인은 청록파의 조지훈 시인과 더불어 ‘내륙의 섬’이라고 말하면서 문향(文鄕)임을 자처하는 경북 영양이 자랑하는 시인입니다.그것을 또한 지난 봄, 문학기행을 가서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외부인에게 오일도 시인은 그다지 많이 알려진 시인이 아닙니다. 시인의 생애도 짧거니와 작품의 수도 많지 않고 시인으로서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시인의 본명은 오희병(吳熙秉). 그러니까 일도는 아호인 셈인데 본명처럼 알려진 것입니다. 시인의 고향은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 감천마을이라고들 부르고 있었습니다.별로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마을로 낙안오씨의 집성촌이라 했습니다.오일도 시 공원을 비스듬히 넘어 등성이 길을 따라 감돌